客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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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이안 <색, 계>

스테레오 2009. 8. 2. 17:05

나는 역시 이안의 팬인가 보다. 나는 그의 영화를 보며 자주 감탄한다.   

그는 거대자본으로 영화를 만들기 때문에 대중에게 볼거리 선사를 잊지 않으면서도 -- <와호장룡>, <헐크>의 스펙터클; 대다수 이성애자들에게는 충분히 자극적인 소재인 동성애를 다룬 <브로크백 마운틴>; 그리고 이번 영화에서는 문제의 그 '10분'만으로 이미 많은 사람들이 영화관을 찾지 않았던가 --그러면서도 대중들이 그저 좋아할 만하게 영화를 만들어 주지 않는다. 이번 영화에서도 엔딩 크래딧이 올라가는 순간 옆에 있던 관객의 한 숨과 이어나온 반응들은 꽤나 허탈하다: 뭐냐, 뭐가 이렇게도 기냐, 어쩌라고 등등... 나 또한 마지막에 가서 일말의 해피엔딩을 잠시 기대해 보았지만, 영화가 정말 그렇게 갔다면 150분의 시간이 아까웠을 것이다. 이런 면에서 이안의 영화는 대중에게 소원을 말해보라고 속삭이는 지니이자 동시에  "대중의 소원을 다 들어주는 영화 혹은 드라마는 예술이라기 보다는 오락(entertainment) 혹은 상품(commodity)에 불과하다"는 벤틀리(Eric Bentley)의 지적을 무시하지 않는 선을 유지한다. 

이안 감독의 이력을 자세히 알지는 못하지만, 영화 속에서 극중극을 보여준다는 점으로 미루어 볼 때, 그의 영화 역시 연극에 뿌리를 두고 있지 않을까 추측해볼 만하다. 탕웨이가 연기한 치아즈는 홍콩에서 만난 무리들과 항일투쟁연극을 함께 하는데, 그녀의 연기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무대를 넘어서 '막 부인'이 되기에 이른다. 이 보이지 않는 연극은 매국노 이를 응징하기 위함이다. 그런데 왕조위가 연기한 李는 사실 치아즈가 말하는 것처럼 더 철저한 가면을 쓰고 있는 인물이라 할 수 있다. 철저히 경계하는(cautious) 인물에게 접근하기 위하여 막 부인은 그의 색(lust)을 유발하는 전략을 편다. 이를 위해 동지와 불편한 '예행연습'까지 이행하고 그의 情婦가 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녀는 이것이 과연 분노나 애국심에서 비롯된 자기 희생인지 아니면 그에게 빠져들어가는 것인지 자기도 알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이러한 그녀의 심리, 戒와 色이 상호작용하는 李 장군의 심리, 위민과 그의 대학생 친구들의 높은 이상, 그리고 그것을 감당하지 못하는 지식인 특유의 무기력하고 어설픔이 영화 전반을 뒤덮고 있다. 영화의 결말은 이러한 분위기에 충분히 조응하고 있다고 보인다.

한편 李 장군은 동아시아의 공통의 분노를 한 몸에 받을만한 인물임이 분명할 텐데, 영화는 저항군의 우영감보다 그를 더 인간적으로 느끼도록 인도한다. 관객들은 이 장군이 무슨 악행을 저지르는지 직접 목격하지 못하고, 다만 그의 괴로워하고 불안한 모습을 봄으로써 그에게서 인간성을 느끼게 된는 반면, 그녀의 호소를 들으려 하지 않고 끝까지 철저히 이용해먹는 우영감의 매정함은 관객을 질리게 만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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