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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District 9: 탈식민주의적 메타 픽션

스테레오 2009. 10. 15. 20:40

디스트릭트 9
감독 닐 브롬캠프 (2009 / 미국)
출연 샬토 코플리, 윌리엄 앨런 영, 로버트 홉스, 케네스 코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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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계생명체는 더 이상 새롭지 않다. 여기에는 스티븐 스필버그가 크게 기여한 바 있다. 비록 피터 잭슨이 고무인간이나 오르크 따위를 만드는 데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노하우를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키틴질에 더듬이가 달려있고 끈적한 무언가와 자주 함께 등장하는 외계생명체는 <에일리언>, <스피시즈>, <스타쉽트루퍼스>와 같은 시리즈물에서부터 <인디펜더스데이>와 같은 SF 재난영화 등에서도 충분히 봐오지 않았던가. 

이 영화의 새로운 점이자 동시에 미덕인 부분은 외계인을 탈식민주의적 시각에서 보도록 유도한다는 점이다. 어느날 우주선 한 대가 지구에 불시착 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공중에 떠 있는 상태로 머물러 있다.) 설상가상으로 이들이 멈춘 지점은 남아공의 요하네스버그. 이들이 어디에서 어떤 이유로 이곳에 왔는지는 설명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이들이 지금 머물러 있는 그곳이기 때문이다. 그 땅의 지배 세력은 전지구상에서 그 누구보다 인종 격리 정책에 뛰어난 노하우를 지니고 있기에 그들은 신속하게 이들 외계인들 위한 공간 제9구역(district 9)을 설정하고 이들을 격리 수용시킨다. 분명 지구인들보다 더 뛰어난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이들 외계인들은 지구인들을 제압하지 못한 채 자신들의 무기를 깡통 고양이 먹이로 바꿔 먹으며 20여년간 거지 같은 생활을 영위하는 새우(prawns)으로 전락했다. 흥미로운 것은 외계인 구역에 머물면서 무기와 저질 식량을 바꿔주고 있는 나이지리아계 갱단이다. 이들 역시 어떠한 이유에서 자신들의 고향에서 이곳으로 왔는지 설명되지 않는다. 이곳의 두목 뭄보(Mumbo)는 그 곳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고 있지만, 그 또한 D9 바깥 공간에서는 활동할 수 없는 격리된 존재라는 점에선 외계인들과 다를바 없다. 재왕적 권력을 가진 그가 앉아 있는 보좌가 다름아닌 휠체어라는 점은 그의 불완전성을 잘 드러내준다. 뭄보가 외계인 고기를 마치 스테미나 식품처럼 탐하는 것이 한편 우스꽝스럽기도 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이것이 외계의 힘을 얻어 서브얼턴(subaltern)으로서의 지위를 넘어서 보려는 몸부림이라는 점에서 그만큼 절박한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영화는 D9 밖에도 아파르트헤이트가 여전히 남아 있음을 보여준다. 외계물질에 감염된 위커스는 MNU를 탈출하여 D9으로 가던 중 배고픔을 못이기고 햄버거 가게에 들어가는데, (비록 외계인으로 변신중이긴 하지만) 네덜란드계 백인인 위커스가 들어가자마자 주문을 할 수 있었던 것과는 달리 흑인들은 왼편에서 상당히 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 30세 젊은 감독인 블롬캄프(Neill Blomkamp)는 이처럼 자신의 나라에 여전한 인종차별의 문제를 적절한 곳에 배치하면서도 직설적인 발언을 삼가한다. 그러면서도 그는 여느 예술가보다도 극단적인 정치적 표현을 시도한다. 외계인의 인권 문제 앞에서 호모사피엔스 간의 피부색 차이는 단숨에 사소한 것이 되고 만다.

또 한 가지 이 영화의 성과는 공상과학이라는 이제는 다소 식상한 장르에 리얼리즘을 시도한다는 데 있다. 실제 세계를 생생하게 모방하는 것이 자연주의 혹은 리얼리즘의 본령이라 할 때, 그동안의 SF가 사실성을 획득하기 위해 기울인 노력은 상정된 세계를 시각적으로 최대한 구현하여 마치 그 세계가 실재하는 것처럼 속이는 데 대부분 할애되었다. 얼마 전 개봉했던 <트랜스포머: 패자의 역습>은 현 시점에서 이러한 노력의 최고 성과라 하겠다. 그런데 <District 9>에서는 허구를 사실로 만들 수 있는 다른 전술을 구사한다. 감독은 현대인이 뉴스와 다큐멘터리라는 매체를 통해 세상을 보고 '진실'을 파악한다는 데 착안하여 허황되기 짝이 없는 소재를 뉴스 화면에 담아 내보내고 가짜 전문가들을 동원하여 그들에게 이 사건에 대해 진지하게 말하도록 한다. 매체에 길들여진 현대인은 이것을 쉽게 무시할 수 없다. 물론 <블레어위치> 이래로 최근의 <클로버필드>까지 페이크다큐의 방식이 그동안 여러 차례 시도되었고, 최근 <트랜스포머: 패자의 역습>에서는 뉴스와 유튜브 영상까지 활용한 경우도 있었지만, 이번 영화는 이것을 액자식 구조로 담아서 본격화 했다는 점에서 의미있는 작업이라 할 수 있다. 이 영화는 현대인이 무엇을 진실로 믿는지를 효과적으로 폭로 한다는 점에서 사이언스 리얼리즘이자 메타 픽션이라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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