客記

고선웅 《인어도시》 본문

공연

고선웅 《인어도시》

스테레오 2010. 7. 10. 02:02
스페이스111의 인인인 기획 공연 마지막을 장식한 《인어도시》를 보았다. 죽음을 목전에 둔 호스피스 병동에서 환자들과 간호사, 여기에 기이한 몇몇 인물이 더 등장하면서 이야기는 현실과 환상, 삶과 죽음 사이를 넘나든다. 병동이라는 장소는 응접실 연극 전통에서 볼 때 나름 참신한 공간적 배경이라 할 만하다. '말발'이 좋은 작품이었으며 특히 마지막에 인물들 각자가 자신의 삶을 정리하는 대사들은 리듬감이 있고 재미도 있었다. 
각각이 나름대로 가슴아픈 사연을 가지고 있고, 그러한 과거로 말미암아 치명적인 병에 걸리게 된 그들의 상황에 동정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그 방에 모인 사람들이 전부 같은 운명 앞에 놓여 있는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모두가 같은 운명을 하고 있기 때문에 그들이 서로 다른 이야기를 펼쳐도 그다지 새로울 것이 없다. 당연히 다른 이야기를 할 것이라고 먼저 기대해버리기 때문이다. 나열식 전개가 이야기의 볼륨을 일정 수준 이상으로 만들어 낼 수 있는 방식임에는 분명하겠으나, 단조로움을 피할 수는 없는 것 같다. 이 점은 앞서 히라타 오리자의 작품과 비교해서 생각해봄직한 대목이다. 히라타의 경우에는 죽음이라는 같은 주제를 다룸에도 불구하고 죽음과 별반 상관없을 것 같은 이국의 휴양지를 배경으로 함으로써 의외성을 확보할 수 있었으며, 그로 인해 삶과 죽음을 넓은 진폭 속에서 이야기 전개가 가능한 자유 또는 여유를 얻을 수 있었다. 또한 죽음을 기다리는 사람들과 히키코모리가 휴양지에서 만나면서 이야기는 일본 사회의 문제를 건드리는 데까지 나아간다. 
반면 고선웅의 설정은 죽음에 대해 예상 가능한 범위를 벗어나지 못한다. 핑계없는 무덤없듯이 병상에 누워있는 한 사람 한 사람이 나름대로 사연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설정은 각자의 사연을 하나씩 드러내고 그들의 억울함을 풀어주면 미션이 완수되는 단순한 구조를 벗어나기 어렵다. (그 와중에 아귀의 등장이 의외성을 갖기도 하지만, 그 괴상한 형체의 등장을 통해 얻은 것과 잃은 것을 냉정히 따져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인어는 저승사자의 한 변이로 보이며, 각자가 그들의 응어리를 풀고 이승을 떠날 것을 '신경질적으로' 요구한다. 이 점이 인어 아가씨를 통해 벌어지는 씻김굿에 동참하는 것을 어렵게한 요인이 아닌가 생각된다. 어쩌면 죽음 앞에 있는 그들을 한없이 애처롭게 봄으로써 센티멘털한 감정을 유발했다면 그보다 더 나빴을 것 같다. 그러나 여전히 인어 아가씨가 왜 그렇게도 이상한 샤우팅 발성을 해야 했는지 이해되지 않는다. (그녀가 "전형적인 빙의된 무당"의 연기를 한 것이라는 한 블로거의 지적도 귀담아 들을만 하다: http://v.daum.net/link/8032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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