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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파괴된 《파괴된 사나이》

스테레오 2010.07.17 12:14

김명민이 주연한 "파괴된 사나이"를 봤습니다. 더할 것보다 뺄 점수가 많은 작품이었습니다. 최근 관객몰이에 성공한 유괴/납치 영화들을 조합한 매너리즘인데, 어떤 원인에서인지는 모르겠지만 각각의 요소가 넘치거나 모자라 아쉽네요.  http://twitter.com/seanted/status/18599947598

트위터에다 간단하게 감상을 올린 이후 좀더 보충할 필요가 있을 것 같아 아래와 같이 덧붙여 봅니다. 

***

매너리즘이라서 잘못된 것은 아니다. 다만 거인의 어깨를 빌려 높이 올라갔다면, 거인보다 조금이라도 더 멀리 보아야 하는데, 그런 면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이 이 작품의 문제이다. 

주영수가 아이를 유괴당하고 8년이라는 세월이 지나 다시 만난다는 상황은 《올드보이》에서 오달수가 납치당한 뒤 15년이 지나 자신의 딸을 만나게 되는 것과 흡사하다. 그러나 《파괴된 사나이》에서는 그러한 시간의 흐름이 작품 내적으로 충분하게 활용되지 못하고 있다. 왜 8년이라는 시간이 지나야 하는 것인가? 그동안 무슨 변화가 일어났는가? 최병철은 왜 8년이 지나 주영수에게 다시 접근하는가? 이우진은 오달수에게, 그리고 관객에게 바로 이러한 물음을 던지고 있으나, 최병철은 그러하지 못한 것이다. 

최병철은 아이들의 몸값을 받아 하이파이 오디오를 갖추는 데 사용한다. 흔히들 하이파이에 미치면 패가망신한다는 말들을 농담삼아 하는데, 이 작품은 그것이 농담이 아님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섬뜩한 면이 있다. 이점에서 이 작품을 "미학과 윤리의 불일치를 사이코패스에 빗대"었다는 황진미의 해석은 적절하다고 하겠다. 그러나 자신의 허영을 충족시키고자 아이를 지속적으로 유괴 살인한다는 설정 또한 박찬욱 감독이 《친절한 금자씨》에서 써먹은 바 있다. 그래서 엄기준이 자신의 감상실에서 발가벗고 K660 소리를 들어보는 장면은 누군가에게는 팬서비스일수도 있으나, 그다지 유쾌하지도 신선하지도 못하다. 

보다 큰 문제는 주영수가 목사였다는 설정을 너무 가볍게 사용하고 버렸다는 점이다. 주영수를 딸 아이를 유괴당한 상태에서 용서에 대한 설교를 하는데, 그 본문은 다음과 같다: 

그 때에 베드로가 나아와 가로되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번까지 하오리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게 이르노니 일곱번 뿐 아니라 일흔번씩 일곱번이라도 할찌니라 (마태복음 18:21-22)

아이를 유괴당한 목사 앞에 던져진 용서하라는 신의 명령은 충분히 극적 긴장과 아이러니를 불러 일으킬 수 있다. 그런데 주영수의 대답은 어떠한가? 그는 "X 까고 있네" 한 마디로 목사직을 버려 버린다. 그로 인해 상황이 만들어 낼 수 있는 극적인 갈등이나 사고 실험은 진척을 이루지 못한 채 포기되어 버린다. 이것은 크나큰 손실이 아닐 수 없다. 관객들은 최병철이 교회 음향 공사 전문가이므로 아마도 예전에 최병철이 주영수의 교회 공사도 맡지 않았을까 하는 정도의 연관성을 찾고 싶어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작연출을 도맡은 우민호는 최병철이 어떤 이유에서 목사의 딸을 유괴했는지에 대해서도 침묵하며, 목사인 (혹은 적어도 전직 목사였던) 주영수의 고뇌를 다루지도 않는다. 이 부분 역시 박찬욱이 박쥐에서 현상현의 고뇌를 극적 갈등의 중심으로 삼은 점이나, 이창동이 《밀양》에서 신애의 어려움을 파고 들었던 점과 대비된다. 

이러한 내면적 갈등이 결여는 김명민이 주영수 역을 연기하기 어렵게 하는 만큼, 또는 그 이상으로 엄기준에게 어려움을 안겨준다. 유괴범이라는 역할 자체가 관객에게 동정을 받기 어려운 것은 당연하지만, 그가 주인공의 딸을 살려두고, 또 지금까지 키워주고 있었다는 상황은 관객이 그에게 최소한의 동정을 부여할 수 있는 지점이다. 그러나 그가 혜린이를 살려둔 이유가 하나도 밝혀지지 않고, 자기 마음에 들지 않으면 무조건 죽여버리는 살인마가 되는 순간 관객은 그를 철저히 외면할 수밖에 없다. 앞서 올누드 장면이라든지 K660을 사러 간 집 화장실에서 변기뚜껑을 들고 거실로 나오는 장면은 허탈한 큰 웃음이 터지는 장면으로 그 장면을 보는 순간 관객은 이제 그만 그가 빨리 '뒈지고' 영화가 끝났으면 좋겠다는 심정일 뿐이다. 아쉽게도 이 영화는 심각한 문제를 적당히 만드는 것은 그만큼 영화를 파괴시킨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가 되고 말았다.  

파괴된 사나이
감독 우민호 (2010 / 한국)
출연 김명민,엄기준,박주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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