客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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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스토이의 민중지향적 감염 예술론, <예술이란 무엇인가>

스테레오 2011. 6. 9. 01:47
촌부의 명랑한 노래 한 곡조가 베토벤의 소나타보다 더 훌륭한 예술이라 주장하는 톨스토이의 민중지향적 감염 예술론, <예술이란 무엇인가> 

톨스토이는 예술이라는 것이 “많은 사람들의 노력[노동]과 생명을 요구할 뿐만 아니라 경우에 따라서는 인간 상호간의 애정까지 파괴하면서도, 그 본질이 무엇인지는 명확하게 규정되어 있지 않다”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자신의 예술론을 시작한다(제1장). 그렇게 값비싼 대가를 치르고 있는 활동이 과연 진정한 예술이고, 이것은 그만한 희생을 강요해도 좋은 만큼 중요한 것인가? 이 물음에 답하기 위해 톨스토이는 먼저 다음과 같이 묻는다. 예술이란 무엇인가? 좋은 예술이란 무엇인가? 첫 번째 질문에 대한 일반적 대답은 예술은 미를 산출하는 것이다라는 것으로(제2장), 그렇다면 우리는 이제 미란 무엇인가 하는 물음을 던져야 한다. 톨스토이는 이러한 질문에 대답하고자 먼저 서구 미학사에서 제시된 다양한 대답들을 살펴본다. 그는 이런 대답들의 많은 견본을 조사해 보지만(제3장), 결국 하나의 단순화된 결론에 도달한다. 그는 이 대답들이 두 가지 근본적인 개념으로 귀착된다고 말한다. 그 중 하나는 미의 개념을 최고의 완전성--신과 합일시키려는 시도--으로 승화시키려는 공상적 정의이며, 또 하나는 미란 우리가 그 대상에 대해 [무관심적] 쾌감을 느끼는 것이라고 보는 주관적 정의이다(제4장).

그런데 첫 번째 객관적 정의도 주관적 정의와 마찬가지로 쾌락 원칙에 귀결되기 때문에, 예술을 미로써 정의한다는 것은 곧 그것을 쾌로써 정의하는 것이 되며, 이로써 예술을 미에 의해서 판단하는 것은 그것이 제공하는 쾌로써 판단하는 것이 된다. 그러나 톨스토이는 예술에 대한 이해를 시도하는 당대 미학이란 단지 상층계급에 쾌를 제공하는 예술 작품들을 기준으로 정립된 예술 이론을 바탕으로 다른 모든 것을 그 이론에 맞추려는 아전인수를 범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그리하여 톨스토이는 예술에 대한 바른 이해를 위해 우선 근대 미학적 틀에서 벗어날 것을 요청한다.  

그렇다면 예술의 진정한 기능은 무엇인가? 톨스토이에 따르면 언어가 의사를 소통하기 위한 매체이듯이, 예술은 감정을 소통하기 위한 매체이다. 감정의 소통을 톨스토이는 ‘감염’이라고 부른다. 즉 그에게 있어 예술 활동은 “인간이 남의 마음에 감염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에 기초한다(제5장). 즉 각자 속에 동일한 감정을 불러일으킴으로써 지각자로 하여금 창작자의 감정을 공유하게 만들고 상이한 지각자들이 서로의 감정을 나누어 가지도록 하는 것이다. 이리하여 톨스토이는 다음과 같은 정의를 제시한다.     
 
예술이란 어떤 사람이 자기가 경험한 느낌을 의식적으로 일정한 외면적인 부호로써 타인에게 전하고, 타인은 이 느낌에 감염되어 이를 경험한다는 것으로써 성립되는 인간의 작업이다.(72, 페이지 수는 범우사판을 따름)  
 
이러한 감염의 원리는 톨스토이로 하여금 서구의 예술적 천재(보들레르, 입센, 베토벤, 바그너 등)의 최고 생산물로 간주되어 왔던 음악, 회화, 문학, 그리고 연극작품들 대부분을 폭넓게 공격할 뿐만 아니라, 이와 동시에 몇 편의 단편소설을 제외한 자신의 초기 작품들을 거부하도록 했다. 또한 직업 예술가(성실성의 상실), 예술 비평가(진정한 예술품의 감염력과 모순), 예술 학교(진정한 예술 감각 둔화)는 진정한 예술을 장려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거짓 예술품의 제작을 조장하는 것으로 보았다(제12장). 

톨스토이에게 있어서 예술과 위조 예술 사이의 기본적 구분은 감염을 예술의 확실한 표식으로 이해하는 자신의 예술 정의로부터 직접적으로 도출된다. 이러한 감염을 위해 요구되는 요인들은 다음과 같이 세 가지가 있다(제15장). 감정의 독창성, 전달의 명확성, 예술가의 성실성이 바로 그것인데, 이 중에서도 성실성이 가장 실질적이고 중요하다고 톨스토이는 말한다. “즉 예술가는 자신이 전달하고자 하는 감정을 마음속으로부터 표현하고 싶다는 내적인 욕구를 가지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다”(200). 그는 비록 그 정도에 있어서는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이러한 세 가지를 진정한 예술 작품이 되기 위해 반드시 갖추어야 하는 것으로 보았다. 

작자가 전달하는 감정을 경험해서 그와 같은 심경에 감염되고 다른 사람들과의 결합을 느낄 때 예술이 성립한다. 따라서 감염력은 예술의 특징일 뿐만 아니라, 그 감염력의 정도는 예술의 가치를 측정하는 척도이기도 하다. 톨스토이에게 좋은 예술의 양적 판단기준은 감정의 강도, 즉 “감염이 강렬하면 할수록 그 예술은 예술로서 더 훌륭한” 것이 된다. 그러나 톨스토이는, 순전한 양적 판단은 그 자체로서 의미하는 바가 거의 없다고 말한다. 무엇이 타고 있는지 모르고서 어떤 불을 좋다고 판단할 수 없는 것 이상으로 단지 그것이 감정을 환기한다는 이유만으로 어떤 작품을 좋다고 판단할 수는 없는 것이다. 따라서 예술적 좋음에 대한 궁극적이고 피할 수 없는 판단은 어떤 감정들이 가질 만하고 어떤 감정들이 해로운 것인가를 우리에게 말해주는 진정한 기준 위에 근거하여야 한다. 이것을 좋은 예술의 내용적 기준이라 하겠는데, 톨스토이에게 그러한 기준은 궁극적으로 종교적이다. 여기에는 톨스토이 자신의 종교관이 전제되어 있다. 

톨스토이는 어떤 사회의 사람들이 다다른 최고의 인생관, 곧 그 사회의 종교적 자각은 그 사회가 지향하는 최고선을 규정하는데, 이것은 종교적 儀式으로 구체화 되는 것과는 별도로 모든 사회의 진보를 위한 토대가 된다고 보고 있다. 예술을 판단하는 내용적 기준 역시 그 시대의 종교적 자각에 있는 것이다. 한 특정 사회의 좋은 예술은 그 시대의 종교적 자각에 의해 인정된 최고 감정을 전달하는 것이다. 물론 일부 (타락한) 계층의 사람들은 그 종교를 공유하고 있지 않을 수도 있으며, 그들에게 예술이란 단지 쾌의 수단에 불과하다. 그러나 톨스토이는 종교적 통찰이나 도덕적 지각을 촉진하는 것이 예술의 기능이라고 보았다. 그가 이해한 동시대에 가장 널리 보급된 종교적 자각은 모든 사람들이 신의 자녀로 이들 모두가 사랑으로 결합되어 있다고 보는 만인 동포애적 생각이다. 보다 구체적으로 톨스토이의 시대에서 좋은 예술이란 (질적으로 말하자면) 이 감정을 다음 두 가지 방법 중 어느 하나로써 소통케 하는 것이다. 첫째는 협의의 종교예술로서 신과 이웃에 대한 세상 사람의 종교적 자각에서 흘러나오는 감정을 전하는 예술이고(<군도>, <레미제라블>, <지하로부터의 수기>, <톰 아저씨의 오두막>, <하나님은 진리를 보고 계시다>), 둘째, 보편적 예술로서 극히 단순한 일상적인 감정이면서 전세계 만인에게 받아들여지는 감정을 전하는 예술(<돈키호테>, <데이비드 카퍼필드>, 몰리에르의 희곡들, 고골ㆍ푸쉬킨의 단편들, <카프카스의 포로>)이다. 

톨스토이에게 예술은 언어와 함께 인류를 진보시키는 필수적 기관으로 이해된다(제17장). 그는 예술이 이 의무를 수행하지 못할 때 끼치는 폐해는 막대하다고 보았으며, 당대 상류 사회를 중심으로 통용되던 퇴폐 예술이 끼치는 (사람들의 고귀한 노동력을 희생하고 마음을 타락시키는 등) 심각한 악영향을 우려하였다. 그러나 그는 플라톤이나 기독교, 이슬람 교 등에서와 같이 예술 전체를 근절시키는 방식을 따르지 않고, 현재 빠져 있는 오류를 깨달아 거기에서 뛰쳐나올 길을 찾는 데 주력했다. 현대 예술에 대한 그의 인식이 지극히 암울함에도 불구하고 그가 미래의 예술에 대해 유토피아적 전망을 제시할 수 있었던 것은 예술에 대한 이와 같은 믿음이 자리하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물론 이때 미래의 예술이란 최상의 종교적 자각이 간결하고 단순하고 명확하게 전달되어 온 인류가 하나로 결합하는 이상에 봉사하는 예술이다. 

예술이란 무엇인가
국내도서
저자 : 톨스토이(Смерть Ивана Ильича(Lev Nikolaevich Tolstoi)) / 이철역
출판 : 범우사 1998.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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