客記

아크로바틱 파우스트 본문

공연

아크로바틱 파우스트

알 수 없는 사용자 2011. 10. 29. 01:30



오래 전에 예매해 두었던 <아크로바틱 파우스트>를 보았다. 아이슬랜드의 베스투르포트라는 극단의 작품인데, 이 팀은 몇년 전에 같은 곳에서 카프카의 <변신>을 원작으로 한 작품을 올려서 호응을 얻었던 바 있다. 제목에 들어 있는 아크로바틱은 괴테의 이 서재용 희곡을 극장으로 불러오기 위한 연출의 방편이었다. 

주인공 요한은 젊은 시절 이름을 날린 배우였지만, 지금은 요양원에서 하루하루를 무료하게 보내고 있다. 찾아오는 사람들이 가끔 자신을 알아봐 주지만, 오히려 그것이 현재 자신의 모습을 더 초라하게 만든다. 그나마 자신을 돌봐주고 자기 이야기에 귀기울여 주는 젊은 여간호사(그레타, 또는 그레첸)에게 연정을 느끼지만 어떻게 해볼 수도 없는 처지가 슬프기만 하다. 젊은이들이 사랑을 찾아 요양원을 떠난 크리스마스 이브, 요한은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목을 메는데, 이때 메피스토펠레스가 자신에게 나타난다. ... 그 후 이야기는 비교적 단순하다. 자신에게 영혼을 맡기면 원하는 걸 모두 이루게 해주겠다고 메피스토펠레스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요한은 젊음과 그레타를 얻는다. 그러나 그렇게 얻은 젊음과 사랑은 또한 금세 사라진다. 마지막 순간 요한은 자신의 뻣뻣한 무릎을 꿇고 기도한다. 다시한번 기회를 주십사 하고.  

알고 보니 연출을 맡은, 이렇게 읽는 게 맞다면, 기실리 가르다손(Gisli Örn Gardarsson)은 과거 체조 선수 출신이라고 한다. 자신의 장기를 살려 배우가 되었던 그는 자신의 장기를 잘 살린 공연을 하고자 연출까지 맡게 되었고 지금은 이 둘을 병행하고 있다고 한다. 스케네 형태의 무대 뒷면과 객석 위 전체에 그물은 배우들에게 넓게 뛰어놀 공간을 마련해준다. 배우들이 그 위로 올라가서 뛰어 놀고 매달리는 동작을 반복한다. 종종 객석 3층 높이에서 아래 그물로 뛰어내리는 방식으로 등장하기도 하는데, 그때마다 효과음과 조명을 함께해 관객들을 놀래킨다.

그물, 줄, 공중 그네 따위에 매달리는 게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짧은 공연 시간만큼이나 그들이 보여준 아크로바틱 역시 기대에 못미친다. 물론 그 이상이라면 차라리 서커스라 불러야 했을지도 모르겠으나, <태양의 서커스>나 <스파이더맨> 등으로 높아진 관객의 눈높이에는 부족함이 느껴지는 수준이었다. 마찬가지로 괴테 애호가들에게도 <파우스트>를 맛뵈기로만 보여줘 그들을 만족시키기에도 어려웠을 것 같다. 다만 같은 이유에서 몇 차례 언급된 <맥베스> 대사들은 셰익스피어 애호가들에게는 의외의 수확이었으리라. 고전을 자유롭게 요리하는 것이나 과감한 장치들은 부럽기까지 하지만, 새롭지도 충분하지도 못해 아쉬움이 남는다. 


공연이 끝나고 연출과의 대화가 있었는데, 재미있는 일화가 있어 소개한다. 한 여성이 "공연 중 선정적인 장면(여배우의 상체 노출)이 꼭 필요했는가"라고 물었다. 연출은 구글에서 그 장면의 제목인 "발푸르기스의 밤(Walpurgis night)"을 한번 찾아보라고 했다. 그러면 아마 "매우 음란하고 섹시한(obscene and sexy)" 사진들을 많이 볼 수 있을 거라면서 말이다. (검색결과 보기: http://goo.gl/rclV1) 그리고 아이슬란드에서 70년대에 있었던 공연에서는 출연자 전원이 나체로 출연했었는데, 그 장면을 이 공연에 대한 오마주로 볼 수도 있겠다고 대답했다. 그런데 그는 이런 말을 하기 전에 먼저 이렇게 되물었다: "이 작품 읽어 보셨나요?" 아마도 이번 연출과의 대화 중 가장 도발적이고 또 무식한 질문이 되어 버리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누구 편을 들고 싶지는 않다. 질문도 대답도 서로에겐 마음에 들지 않았겠지만, 그들 나름대로는 정당했기 때문이다.


 from http://vesturport.com/media/pictures/faust-photos/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