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2019/02 (7)
客記
미국에서 활동하는 한국계 배우 켄 정에 대한 관심으로 보게 되었다. 10년이 지난 영화다보니 넷플릭스에 이미 세 편이 다 올라와 있는 상황이다. 1편은 꽤 흥미로웠다. 총각 파티는 우리에겐 낯선 문화이지만 미국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 어느 정도 친숙해진 통과의례(?)라 상황을 파악하는 데 어려움은 없다. 예상되는 광란의 밤을 훅 건너뛰고 다음날 모든 게 엉망이 되어 있는 상태에서 깨어나 뒷수습을 하면서 전날 밤 무슨 일이 있었는지 하나씩 찾아가는 형태로 플롯이 구성되어 있는 점이 흥미롭다. 전형적인 추리극의 방식이라 할 수 있고, 최종 결말도 김전일이나 셜록홈즈 등에서 봐왔던 방식과 크게 다르지는 않지만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데?"라는 궁금증을 자아내기엔 충분하다. 켄 정의 등장은 소문대로 충격적(..
지금은 편지가 그 어떤 시대보다 빠르고 저렴하게 배달되는 시대이지만, 혹은 그런 시대이기에, 아무도 편지를 쓰지 않는다. 물론 텍스트 메시지나 카톡도 문자로 주고 받는 대화라는 점에선 편지의 범주에 포함시킬 수도 있다. 하지만 카톡이나 메시지는 매체는 문자이지만 방식은 한 마디씩 짧게 즉각적으로 주고 받는 것이 일반적이란 점에선 전통적인 편지와 분명 다르다. 이 책을 읽으면서 편지가 소멸된 이 시대에 편지글의 가능성을 보았다. 특히 전문적으로 글쓰는 사람들은 편지글의 소중함을 잊지 말고 어떤 글이든 마음 속에 가상의 수신자를 설정하고 그에게 편지 쓰듯이 글을 쓰는 훈련이 필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이건 우선적으로 나 자신에게 두고 하는 말이다. 이 소설은 넷플릭스 영화로도 제작되었는데, (그래서 작년에 재..
아재 개그란 말이 나오기 십수 년 전부터 나는 말장난을 좋아했고 주변의 차가운 시선에도 굴하지 않았다. 사람들이 이 맛을 알게 되는 때가 올 거라 생각했고, 간혹 같은 노선을 걷는 사람들을 만나면 내심 반가웠다. 그렇다고 해서 설운도가 옷을 입는 순서가 '상하의 상하의'라는 식의 막무가내 개그까지 좋아하는 건 아니다. 나를 포함한 아재들이여, 제발 유머에서 최소한의 맥락을 갖추자. 말장난은 말의 경이로움을 표현하는 가장 즐거운 방식이다. 어려서 말을 배울 때 우리는 모두 말 장난의 충동을 느낀다. 말(馬)과 말(言) 처럼 같은 소리인데 다른 의미를 가지는 동음이의어를 대할 때 우리는 적절한 상황에서 그걸로 웃겨보려고 애쓰곤 했다. 친구의 이름과 비슷한 소리를 가진 낱말로 그 친구의 별명을 붙이는 장난은 ..
PG-13 레벨에서 코믹 가족 드라마를 어떻게 써야하는지를 보여주는 모범적인 영화다. 돌이켜보면 상투적인 수법이었단 생각도 들지만 해아래 새 것이 어디 있겠는가. 플롯의 두 축인 엉킴과 풀림을 다양한 가족-이웃-친구 관계에서 만들어내면서 이 이야기가 어떻게 끝날지를 궁금하게 만든다. 작가가 노련하다 싶었는데 Car, Bolt 등 애니메이션의 스크립트를 썼던 작가(Dan Fogelman)다. 노련한 주연 배우들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아들 로비 역의 배우 Jonah Bobo 의 조숙한 중딩 연기를 보고 있기가 즐겁다. 아쉽게도 2012년 이후로는 활동을 하지 않아 그가 어떻게 성장했는지 확인할 방법은 없다.
거국적이고 조직적인 투쟁이 아니라 로큰롤를 향한 한 개인의 덕심열정이야말로 민주주의의 바퀴를 움직이는 숨은 힘이다. 조금 덜 학구적이고 훨씬 더 일찍 그리고 더 많이 라이브 음악이 무대를 장악했더라면 어땠을까? 영화를 보면서도 떼창을 하는 흥부자 한국인이 로큰롤이란 말에서 기대하는 것을 채워주기엔 공연이 몇몇 배우의 열연에도 불구하고 바깥의 날씨만큼 차가웠다.
화장실 코미디의 대가가 만든 드라마 답게 언제 웃겨줄지를 기대하게 만들고 그 기대가 솔찮이 충족된다. 비고 모텐슨은 일부러 살을 찌운 게 아니라 촬영하다가 살이 찐 게 분명하다! 언뜻언뜻 아라곤의 이미지가 나타나는 게 즐겁다. 안두릴의 주인에게 핫도그를 쥐어주다니!!
어디선가 '순전히 송강호를 위한 영화'라는 평을 읽었다. 그 글은 영화에 실망한 사람이 쓴 것이었지만, 대체로 수긍할 만한 평가였고, 송강호 팬에게는 나쁠 게 없는 말이었다. 이 영화가 흥행하지 못한 원인은 만듦새보다 서울 사람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사투리 대사에서 우선 찾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평소 한국 영화 대사를 곧잘 듣는다고 나름 자부하는, 게다가 인생의 반을 경상도에서 살았던, 나 역시 못 들은 대사들이 있었다. 후반부 홀로 고립된 이두삼에게서 맥베스의 고독이 느껴졌다. 이런 걸 좋아하는 나 자신이 약간 변태스럽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