客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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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 슬럼프

닥터 슬럼프 2. 당신의 USB를 믿지 말라.

스테레오 2011. 10. 21. 21:36
지난 겨울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본격적으로 논문을 써야 할 때가 다가오고 있음을 느낌과 동시에 마음에 부담이 점점 커져가던 때였다. 논문을 쓰기 위해선 먼저 지난 대학원 시절 동안 쓰고 모았던 자료들을 정리해야 겠다고 생각했다. 돌이켜 보면 이 또한 문제의 핵심으로 들어가기를 피하는 고질적 증상이었지만, 아무튼 그 당시에는 일단, 좋은 USB 드라이버를 하나 장만해야겠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여러가지 외부 저장 장치 중에서 USB를 고르게 된 이유는 다음과 같다: 

- 외장 하드는 크고 무겁고 번거롭다: 적어도 그때부터 지금까지 쓰고 있는 내 외장하드는 그렇다. 
- 외장 SSD는 너무 비싸다: 이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 SD(XD) 등의 플래시 메모리는 별도의 리더기가 필요하기에 번거롭다. 

이상과 같은 이유에서 나는 USB가 최선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논문을 마무리할 때까지 쓰려면 용량이 어느정도는 되어 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물론 아무리 글을 많이 써도 플로피 디스켓 한장 채우지 못하겠지만, 이런 저런 참고 자료와 이미지 자료까지 생각하면 용량은 다다익선, 아니 대대익선이 아니겠는가. 

그리하여 선택한 제품은 아래 그림처럼 생긴 SONY MICROVAULT 16G 였다.  



보다 시피 요즘 추세와는 다르게 결코 작지 않은 크기의 제품인데, 왜 제조사에서 작게 만들 수 있음에도 크게 만드는지 그제서야 알 수 있었다: 너무 작으면 잃어버릴까 걱정이 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나는 그 당시 이미 다른 USB 드라이버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건 두 가지 의미에서 '너무 작아' 선택되지 못했다. 일단 4G의 용량은 분명 머지않아 부족하게 될 것 같았고, 또 하나는 아래 그림이 잘 보여주고 있다.

 
이 제품(Buffalo RUF2-PS)은 PC에 꽂았을 때 돌출부가 5mm 밖에 되지 않아 이동시 매우 편리하다. 특히 윈도우 비스타부터 지원하는 레디부스트(ready boost) 전용 메모리로 사용하기에 아주 좋다. 그러나 반대로 이걸 빼서 들고 다니려고 할 때에는 항상 잃어버리지 않을까 신경 쓰이는 녀석인 것이다. 

아무튼 이러한 이유로 나는 소니 마이크로볼트에 대학원 시절의 모든 자료를 저장하고 사용하기 시작했는데, 문제는 지난 봄 학기 때 발생했다. 중간 발표 기간이었는데, 외부에서 작업을 해야 했다. 작업 도중 PC가 이상해지는 것 같아 USB를 뽑았는데, PC를 재부팅하고 USB를 다시 꽂았더니 읽어들이질 못하는 것이었다. 나는 그 때 왜 MS에서 "안전하게 ... 제거"라는 걸 만들어 놓고 시키는지 그 이유를 절실히 알 수 있었다. 당장 발표자료가 사라진 것도 심히 혈압이 오르는 일이었지만, 거기 대학원 시절 모든 자료가 다 들어있었다는 걸 생각하면 정신이 아득해지는 일이었다. 여러가지 후회로운 생각들이 몰아쳐 왔다: 왜 나는 안전하지 못하게 제거 했던가. 왜 믿을만하지 않은 PC에서 작업을 했던가. 왜 그 흔한 백업하나 해놓지 않았던가. 왜, 왜, 왜...

순전히 나의 실수에서 비롯된 일이라 누구를 원망할 수도 없고 돌이킬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냥 새로운 마음으로 새롭게 시작하는 수밖에 없었다. 나의 중간 발표 과제도 나의 대학원 시절도. 물론 코스웍 마지막 학기에 그간의 모든 자료를 날려버리고 새롭게 시작해야 한다니 허망하기 그지 없었다. 왠지 국내 제품보다 내 자료를 안전하게 보호해줄 것만 같았던 "SONY"에게 배신당한 기분이었다.  

더 암울한 건 그 안에 앞으로 논문을 쓰는데 사용해야할 자료가 없어 딱히 다시 살려야 한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는 데 있었다. 그냥 그렇게 한동안 나의 소니 마이크로볼트는 책상 서랍안에 고이 방치해 두었다. 그러면서 보다 믿을만한 저장 방식을 찾게 되었는데, 마침 포탈에서 클라우드 방식의 저장 서비스를 시작하던 때라 자연스럽게 그걸 대안으로 삼게 되었다. 다음 클라우드와 네이버 N디스크는 방식에 있어서 약간의 차이가 있었다. 특히 다음은 네이버보다 먼저 PC 로컬 저장공간과 동기화를 지원했는데, 아무래도 한번 당해본 경험이 있는지라 한 군데 보다 두 군데 저장하면 더 안전하겠다는 생각에 다음 클라우드를 주로 이용하게 되었다. (아마 지금은 네이버도 비슷한 기능을 제공하는 것으로 안다.) 비록 네트워크를 통해 저장하는 방식이 되다보니 파일을 열거나 저장할 때 좀더 많은 시간이 걸리긴 하지만, 별도로 백업을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그정도의 불편은 감수할 수가 있었다. 또한 핸드폰이나 아이패드와 같은 장치들에서도 파일을 열어볼 수 있기 때문에 클라우드는 점점 대세가 되어갈 것으로 보인다. 

지난 여름에서야 차일피일 미루던 USB를 복구했다. 외부 업체에 맡기면 복원률이 높지만 비용이 많이 든다고 해서 학교 전산원에 맡겼다. 담당자 말로는 바이러스에 감염되었던 것으로 보인다며 포맷을 한 다음 복구를 한다고 했고, 얼마나 복구될지는 확실히 알 수 없다고 했다. 지난 몇개월간 없어도 사는 데 큰 지장 없는 걸 확인한 터라 그냥 그렇게 해달라고 했다. 다음날 작업이 완료되었다고 연락을 받고 찾으러 갔더니 다행스럽게도 대부분의 자료가 -- 사실 어떤 자료가 있고 없는지도 모르는 것이다! -- 복구되었고, 작업이 복잡하지 않았는지 그냥 무상으로 해주기까지 했다.

지금은 USB와 다음 클라우드를 동시에 사용하고 있다. 방법은 다음과 같다. 일단 USB에 자료를 저장한다. 그런 다음 다음클라우드와 동기화 되어 있는 하드 디스크 폴더에 "SONY"란 이름의 폴더를 만들고 USB와 하드를 동기화한다. 이를 위해 현재는 마이크로소프트에서 제공하는 "SYNCTOY"란 프로그램을 사용한다. 비록 예약 동기화 같은 고급 기능을 지원하지 않아 한번씩 동기화를 실행시켜주어야 하지만, 간단하고 빠르게 자료 동기화가 되기 때문에 편리하다(자세한 내용은 아래*를 참조). 그렇게 하면 다시 한번 하드 디스크와 다음 클라우드가 동기화되기 때문에 같은 자료가 3중으로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어쩌면 하드 디스크에 원본을 저장하고, USB를 백업 드라이브로 사용하는 게 맞을지도 모르겠다. 다만 내가 USB에 먼저 저장하는 것은 이쪽 저쪽 저장하다보면 나 스스로가 헷갈리 수 있기에 그냥 그렇게 하는 것일 뿐이다. 어차피 동기화되면 다 똑같아지니까 말이다. 

아무튼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소중한 자료라면 결코 USB를 믿어선 안된다.


*USB 를 하드디스크와 동기화 하기는 아래 글과 링크를 참조하세요. 

 http://cosyp.tistory.com/59 

 
http://www.microsoft.com/download/en/details.aspx?id=15155

시 연결되지 않으면 MICROSOFT SYNCTOY 라고 구글링하면 최신 주소를 얻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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