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닐 VS 프레디: 두 편의 전기 영화

스테레오 2018. 11. 5. 15:07

이번 가을 비슷한 시기에 개봉한 전기 영화 두 편을 연달아 보게 되었다.

<퍼스트맨>은 마치 달의 저편을 보듯 인류 최초라는 밝은 빛에 가려져 있던 닐 암스트롱의 심적 고통에 동참하게 한다. <스타워즈> 프랜차이즈가 어느덧 40년이 되었고 정교한 그래픽 기술로 우주를 상상하는 것이 너무나도 간편한 일상이 되어버린 이 시점에서 감독은 지구 밖을 '실제로' 나가는 건 그렇게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는 것, 그래서 우주에서 전쟁을 하지 않더라도 인간이 지구를 벗어나는 것 자체만으로도 엄청나게 드라마틱한 일임을 집요하게 보여준다. 위대한 성취에 뒤따르는 희생이 과연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지 묻는 것은 <라라랜드>를, 그 과정에서 영혼을 쥐어짜듯 몰아가는 것은 <위플래시>를 떠올리게 한다. 드라마의 힘은 두 작품을 합쳐 놓은 만큼 강력하다. 단, 광활한 우주를 기대하고 극장에 들어갔다가는 크게 실망할 수 있으며 폐쇄공포증이 있는 사람은 상당히 힘들 수 있다. 또한 핸드헬드에 익숙하지 않은 관객은 주인공이 평지에 있을 때에도 심한 멀미로 고생할 수 있다.

프레디 머큐리를 여전히 그리워 하는 많은 사람들이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를 선택하고 있어서 극장 분위기는 <퍼스트맨>과 사뭇 달랐다. 이제는 유튜브에서 오리지널 영상을 쉽게 찾아 볼 수 있는 85년 "라이브 에이드" 무대에 오르기까지 그룹 퀸의, 그리고 그 중심에 있었던 프레디 머큐리의 여정을 영화는 담고 있다. 전 세계 수(십)억명이 TV로 지켜본 이벤트의 뒷면을 다룬다는 점은 <퍼스트맨>과 유사하지만, 가려진 이면에 무엇이 있었는지를 그의 팬들이 대략 알고 있었다는 점은 다르다. 속편이 지속되면서 의미가 퇴색되긴 했지만 수퍼히어로 영화에서 마이너리티를 얘기해온 브라이언 싱어로서는, 비록 불명예스러운 일로 끝맺지 못했으나, 프레디 머큐리를 현실 속의 엑스맨으로 인식하고도 남음이 있다.

<퍼스트맨>이 TV로 중계되지 않은 역사 속 (은밀한) 장면을 재현하고자 했다면 <보헤미안 랩소디>는 잘 아는 장면을 고화질로 리마스터링 하고 있다. 정교한 모방 자체가 주는 쾌감이 분명하다. 문득 그때 웸블리 스타디움에 있었던 사람들이 이 영화를 보며 어떤 감정을 가지게 될지 궁금하다.

주변 인물을 다루는 방식은 같은 듯 사뭇 다르다. 전자는 영웅을 가족으로 둔 사람들의 고통에 주목한다. 천재가 사회 전체로는 득이 될 지언정 가까이 있는 사람들에겐 상처와 고통을 안겨줄 때가 많은데 "더 퍼스트 맨" 닐 암스트롱은 딱 그러한 인물이다. 프레디 역시 음악 외적인 측면에서 그다지 좋은 가족/친구가 되지 못한다. 하지만 <보해미안 랩소디>는 프레디가 오늘날 레전드로 기억될 수 있었던 것이 바로 그 가족과 친구들의 인내와 포용 덕분이었음을 강조한다. 간혹 지나치게 이해심이 깊어 보이는 그들의 대사가 비현실적으로 들리기도 하지만 때로는 현실이 더 드라마 같을 때도 있으므로 섵불리 개연성을 논할 일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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