客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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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마구마

스테레오 2019. 2. 14. 02:03

아재 개그란 말이 나오기 십수 년 전부터 나는 말장난을 좋아했고 주변의 차가운 시선에도 굴하지 않았다. 사람들이 이 맛을 알게 되는 때가 올 거라 생각했고, 간혹 같은 노선을 걷는 사람들을 만나면 내심 반가웠다. 그렇다고 해서 설운도가 옷을 입는 순서가 '상하의 상하의'라는 식의 막무가내 개그까지 좋아하는 건 아니다. 나를 포함한 아재들이여, 제발 유머에서 최소한의 맥락을 갖추자.   

말장난은 말의 경이로움을 표현하는 가장 즐거운 방식이다. 어려서 말을 배울 때 우리는 모두 말 장난의 충동을 느낀다. 말(馬)과 말(言) 처럼 같은 소리인데 다른 의미를 가지는 동음이의어를 대할 때 우리는 적절한 상황에서 그걸로 웃겨보려고 애쓰곤 했다. 친구의 이름과 비슷한 소리를 가진 낱말로 그 친구의 별명을 붙이는 장난은 안해본 사람이 더 적으리라. 말장난은 아이에게는 놀이와 학습이 구분되지 않는다는 걸 보여준다. 반대로 어른이 될수록 우리는 말이 가진 이 형식적 특성에 반응하기 보다 그것이 가진 의미, 그것이 상징하는 더 크고 심각한 세계에 집중하기를 요구받는다. 어른들이 말장난을 할 때 '갑(자기)분(위기)싸'해지는 것은 그 자체가 재미 없어서일 수도 있으나 보다 근원적으로는 그것이 우리의 통념, 즉 성인의 일상 언어는 경제적이고 엄숙해야 한다는 관념을 위반하는 데서 오는 일시적 혼란이다. 보통 이 혼란은 발화자에 대한 싸늘한 시선과 비난으로 귀결된다.   

부장님들, 혹은 아재들이 말장난에 열광하는 것은 일종의 퇴행현상이다. 그들은 사회가 요구하는 '정상' 어른이 되기 위해 진지하고 경제적인 언어를 사용해왔던 사람들이다. 그러다가 그들이 비로소 주류가 되고 소수일지언정 편하게 말해도 되는 부하가 생겼을 때, 그들은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혹은 억누르고 있었던 유년 시절의 놀이 충동을 다시금 느끼게 된다. 말의 풍성함을 다시 누리게 되었다는 점에서 나는 이게 바람직한 퇴행이라 생각한다. 우리는 그들이 다시 시작한 말 놀이를 타박하지 말고 격려해주어야 한다. 인간은 뭐든 자꾸하다 보면 더 나은 것을 추구하는 법이다.  

 

지인이 운영하는 북카페에 들렀다 제목을 보고 사지 않을 수 없었다. 과연 명저로구마. 필명 사이다는 이 책을 내기 최소 1년 전부터 준비한 작가의 빅픽처구마!


고구마구마
국내도서
저자 : 사이다
출판 : 반달(킨더랜드) 2017.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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