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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보잉의 변화 혹은 진화 - 익스프레션크루의 <마리오네트>의 경우 (+ 2007년 공연 리뷰)

스테레오 2008. 9. 18. 18:00

비보잉의 변화 혹은 진화 - 익스프레션크루의 <마리오네트>의 경우

이 글은 월간 뷰즈(Views) 창간준비호(2006)에 기고했던 글을 약간 수정한 글입니다. 그리고 아래에는 2007년 공연에 대한 후기를 첨부하였습니다.

한국 사회에서 딴따라는 과거로부터 천시 받는 집단이었으나, 오늘날에는 성공한 딴따라에 한해 그 존재를 인정받을 수 있다. 지금까지 ‘춤이나 추고 다니던’ 말썽쟁이 아이들이 세계대회를 우승하며 국제적 명성을 얻게 되자 한국의 비보이(B-boy)들은 한류열풍을 이끌어가는 새로운 존재로 떠오르게 되었으며, 비보잉(B-boying)은 우리가 자랑할 만한 문화상품으로 대접받게 되었다. 정재은 감독의 <태풍태양>(2004)에서 갑바가 꿈꾸던 것처럼 이 일을(비록 분야는 어그레시브 인라인 스케이트에서 비보잉으로 조금 다르긴 하지만) 통해서도 인정받는 세상이 어느덧 도래한 듯하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와 함께 비보이 스스로도 진보 혹은 변화하게 되었다. 드라마 강국인 한국 특유의 배경 때문인지는 몰라도, 그동안 노래에 맞춰 춤추고 새로운 동작을 개발하는 데 집중하던 비보이들이 자신들의 몸동작을 통해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실험을 감행하였다. 어느덧 비보이 전용극장이 생기고 상설공연이 이루어지고 있다. 한국의 대표적 비보이 그룹으로 알려진 익스프레션크루가 대학로 씨어터일에서 한 달간 공연하는 퍼포먼스 <마리오네트(The Marionette)>는 이러한 사회적 배경 속에서 나타난 새로운 시도 가운데 하나이다. 

 

이 작품은 본래 10분 남짓의 꼭두각시 인형과 인형사의 이야기를 다룬 단편적 퍼포먼스에서 시작되었다. 비보잉의 절도 있는 춤동작이 마리오네트 인형의 움직임과 유사한 데에서 착안하여 인형의 동작을 모방하고 인형사와의 갈등과 화해를 다룬 이 작품은 인터넷 동영상의 형태로 알려지게 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호응을 얻었고, 급기야 해외에서도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면서 해외 진출을 위해 이 원형 마리오네트의 이야기에 살을 붙여 장편으로 만든 것이 바로 현재 공연되고 있는 작품이다. (두 작품의 구분을 위해 편의상 이 글에서는 <원형>이라고 부르도록 한다.)

 

한 젊은 남자가 어느 작은 마을에서 마리오네트 인형극을 공연하기 시작하고, 세월이 흘러 새로이 인기를 얻게 된 마술쇼에 그 자리를 내어주게 되기까지 겪게 되는 기쁨과 슬픔의 이야기로 총 6막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각의 마디를 통해 인형과 인형사의 갈등과 화해, 인형사 자신의 내적 갈등, 인형사와 마술사의 갈등, 인형과 소녀의 사랑이야기 등을 재현 및 표현하고 있다. 새로이 창작된 소재의 이야기를 대사 없는 몸짓으로 보여주기 때문에 스토리텔링은 막간에 환등기(projector)를 활용하여 그림과 글자를 통해 서술한다. 각 막은 인형과 인형사의 이야기를 메인플롯으로 하고, 인형과 소녀의 사랑이야기가 서브플롯으로 삽입되어 있으며, 메인플롯 내에서 마리오네트 인형극이 실제로 상연된다는 점에서는 극중극 형식이 사용되기도 했다. 본래 1막 분량의 단편을 다양한 이야기를 엮어 장편으로 확장하는 시도가, 메인플롯과 서브플롯의 주제나 내용이 상호 연관성이 부족하다는 점에서 작품 전체의 통일성을 저해하는 요소로 작용한다.  

 

<마리오네트>는 대사 없이 이야기를 전달한다는 점에서는 무언극이며, 이야기를 전달하는 방식이 춤으로 이루어진다는 점에서는 무용극이라 할 수 있고, 인물들이 가면을 쓰고 연기한다는 점에서는 가면극이라고 할 수 있다. 무언극이자 무용극이기 때문에 배우들은 비보잉의 양식적 동작을 활용한 마임으로 관객과 의사소통을 하지만, 기본적인 스토리텔링은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막간에 환등기를 이용하여 서술되는 서사극적 요소를 도입하고 있다. 막과 막사이의 단절을 통해 다음 이야기를 제시하는 방식은 배우들이 쉼 없이 끝까지 연기하기에는 체력적인 어려움이 있는 비보잉의 특성상 유용한 실용적인 측면과, 비보잉으로 세세한 이야기를 전달하기 보다는 감정을 표현하는 데 집중할 수 있다는 장점을 지니지만, 막간의 잦은 단절과 서사극적 장치가 동반해내는 소외효과는 비보잉이 주는 효과와는 반대로 관객의 몰입을 방해하는 요소로 작용하기도 한다.  

 

무용극이라는 형식적 측면에서 언더 문화에 그 뿌리를 둔 <마리오네트>를 <호두까기 인형>이나 <백조의 호수>같은 고전 발레 작품들과 감히 비교해 보면, 그 유사성과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다. 두 양식 모두 중력의 한계를 끊임없는 신체 훈련으로 극복하고 있다는 점에서 유사한 측면을 가지고 있지만, 그 구체적인 실현 방식은 상이하다: 발레가 서기 걷기 뛰기 등의 기본 몸동작을 우아미로 완성하였다면, 비보잉은 이 중력의 한계를 보다 적극적으로 거스른다. 발레리나가 한 발 끝으로 곧게 서서 완전한 균형을 잡는다면(아라베스크), 비보이는 물구나무 선채 한 손으로 이에 맞서고(프리즈), 발레리나는 한 발로 스텝을 밟은 후(삐루에뜨) 우아하게 회전하지만(앙 뚜르낭), 비보이는 손으로 땅을 짚고 스텝을 밟고(쓰리 스텝, 세븐 스텝), 이어 다리 들어 돌고(플레어 혹은 토마스에서 에어 트랙까지) 머리로 회전한다(헤드스핀). 이처럼 비보이들은 스스로 자신의 뿌리가 언더그라운드에 있음을 인식해서인지 비보잉은 그 동작에 있어서도 철저히 땅바닥을 짚어가며 기성 문화를 역행해 나가는 측면이 강하다.

동작의 기본적인 특징이 메시지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은 당연하고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마리오네트>는 이야기가 기본적으로 동화(童話)의 성격이 강함에도 불구하고 갈등과 불협화 또는 투쟁의 메시지가 강하게 들어있다. 무엇보다 <원형>에서부터 제시되고 <마리오네트>에서는 더 자세하게 보여주는 인형사와 마리오네트의 갈등, 곧 ‘인형들의 반란’ 대목에서 비보잉 양식의 특성과 메시지가 긴밀히 연합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일부 인형들이 인형사에 반발하여 그의 조종을 거부하는 것으로 시작된 인형들의 반란은, 여기에 동조하는 인형과 인형사 및 그의 영향 아래 있는 인형들간의 갈등과 투쟁으로 확대되고, 인형들의 반란은 인형사 자신에게도 영향을 미쳐 인형사를 조종하고 있는 초월적인 손에 반발하는 내적 갈등으로 확대되기도 한다. (신적인 손을 표현하는 데 있어 환등기를 통한 영상을 사용한 시도는 매우 적절했다.) 보는 사람에 따라 예술적 철학적 종교적 차원의 자율성에 대한 알레고리로 읽을 수 있는 이러한 갈등과 투쟁이, 배틀(battle)에 익숙한 비보이들과 만났을 때 그 주제가 분명하고도 적절하게 전달되는 것을 확인 할 수 있었다. 더 나아가 배틀이라는 놀이 형식이 호이징하가 『호모 루덴스』에서 밝히고 있는 것처럼, 인류 역사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바 투기를 뜻하는 희랍어 아곤(αγών)으로 설명될 수 있는 것이라면, 비보잉 배틀이 가지는 보편성을 얼마간 설명해 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마리오네트>는 정숙하게 앉아서 관조하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 공연자와 관객이 함께 노는 열린 구조의 작품이라는 점에서, 한국의 전통 대중연희와도 닮아 있다. 실제로 <마리오네트>는 본 공연이 끝나고 나서도 관객이 일어서서 함께 노는 뒷마당이 길게 이어지는데, 이 점은 전통 탈춤의 놀이 방식과 유사하다고 하겠다. <마리오네트>가 비보잉을 극적인 형식으로 구성하면서도 관객과 함께 호흡하는 열린 연극을 추구한다면, 해학과 신명으로 관객과 함께 호흡하고 사회성을 지닌 연희로 함께 소통할 수 있었던 우리의 탈춤을 한국의 비보이들이 자신들의 형식으로 융합(hybrid)해볼 만한 대상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한국의 비보이들은 공원 한 귀퉁이나 교각 밑 그늘진 곳에서 연습하던 비주류 문화 세력으로, 전국을 순회하며 각종 행사에 구경거리를 제공하던 현대판 남사당패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는 점에서 이 둘 사이의 거리는 사실상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도 않은 것 같다.

 

작품에서 사용된 음악들은 장-피에르 주네(Jean-Pierre Jeunet) 감독의 영화 <아멜리에>(2001)의 OST인 얀 티얼슨(Yann Tiersen)의 음악들이다. 피아노, 아코디언, 멜로디카 등의 악기를 통해 연주되는 밝고 명랑하면서도 동시에 서정적인 멜로디를 통해, 자기 스스로는 그리 행복하게 자라나지 못했지만, 다른 사람들의 잃어버린 행복을 찾아주는 여주인공 아멜리에와, 자신의 온 몸을 던져 관객에게 감동을 선사하는 인형사 또는 그의 마리오네트가 서로 연결된다는 점을 발견하게 된다.

더 나아가 드럼이나 베이스 비트가 없이 클래식한(classical) 음악을 반주로 비보잉을 하는 것은 비보잉이 힙합에서부터 독립하여 하나의 무용 양식으로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시도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다양한 인물군상의 이야기를 담아내고 감정을 표현하는 극 양식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경험과 감정, 갈등을 두루 담아낼 수 있어야 하겠는데, <마리오네트>에서는 특별히 인형사의 내적 갈등이나 나이든 인형사의 몸동작을 표현하는 데 있어서 이 같은 새로운 동작을 시도하지만, 비보이 특유의 과잉된 동작으로 인해 아직은 관객에게 충분히 정서가 전달되지는 못한다. 강한 비트의 알레그로 음악뿐만 아니라 서정적인 아다지오 음악에서도 자신들 고유의 춤을 발견해 낸다면 무용극 양식으로서 비보잉의 입지는 더 넓어 질 수 있을 것이다.

 

야외 또는 간이 무대를 중심으로 활동해 온 비보이들이 실내 공연장으로 들어오게 됨에 따라 많은 변화가 일어나게 되었다. 입장료를 받는 전문 공연이라는 점에서 비보잉 기술뿐만 아니라 공연에 사용되는 모든 요소가 전문성을 담지하고 있어야 인정받을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 무엇보다 가장 큰 변화라 할 수 있다. 이점에서 익스프레션크루의 <마리오네트> 공연이 보완해야 할 점이 드러난다.  무엇보다 공연장의 특성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연출이 아쉽다. 이야기 전개의 상당 부분이 전면 환등기를 통해 이루어짐으로 인해 삼면 객석으로 이루어진 씨어터일에서 좌우측 객석의 관객은 이야기 진행을 파악하기가 어렵다. 이 같은 공연장의 특성을 고려한다면 텍스트를 통한 시각적 서술보다는 엠씨(MC)와 디제이(DJ)가 랩을 활용하여 청각적으로 서술하는 것이 오히려 더 적합하고 비보잉과도 더 조화를 이루지 않을까 생각되는 대목이다. 4막에서 마술사의 형광 조명을 이용한 장면 또한 정면 관객에게만 적용되는 착시현상으로, 나머지 관객에게는 충분한 효과를 발휘하지 못한 대목 역시 공연장의 특성을 미리 고려하지 못한 데서 기인하고 있다. 비보이나 마리오네트 모두 관객과 교감할 때만이 의미 있다는 메시지를 작품의 말미에 텍스트로 명시하는 것은 오히려 관객에게 반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점에서 재고의 필요가 있다. 스스로 자부하듯이 ‘한국인 특유의 완벽한 박자감, 될 때까지 놓지 않는 은근과 끈기, 브레이크를 하기에 크지도 작지도 않은 적당한 체구가 몸이 표현할 수 있는’ 가능성과 상상력을 만들어내는 것은 분명하다고 하더라도,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상품으로서 <마리오네트>가 보완해야 할 부분은 여전히 남아있다. 그러나 여전히 이들 비보이 그룹이 보여주는 새로운 시도는 머지않아 대중적 공연예술의 주도적 흐름이 될 수 있는 잠재력을 충분히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이들의 발전양상을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을 것이다. 



익스프레션 크루, <마리오네트> 2007년 공연 후기

2007년 3월 2일, 충무아트센터 소극장.

익스프레션 크루의 비보잉 퍼포먼스 <마리오네트 2007>은 분명 이우성 단장이 밝히는 것처럼 작년 공연에 비해 여러모로 ‘업그레이드’ 되었다. 무엇보다 새로운 안무가 눈에 띄며, 이 춤은 단순히 양적인 차원에서 뿐만 아니라 줄거리에 부합되도록 중간 중간에 새로운 춤들로 채워졌다. 2006년 공연에서 다소 ‘소외’되었던 좌우 측면 관객을 배려하여 양 측면에 무용수를 더 배치하였다. 조명이나 음향, 그리고 환등기 사용도 이전에 비해 많이 매끄러워졌다. 그 밖의 사소한 문제들은 공연 횟수를 거듭해 나가면 나갈수록 보다 세련되어 질 것이라 확신한다.


분명한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 채 문제점을 지적하는 게 그저 흠집내기로 비춰질 수도 있다는 점에서 관계자들에게 미안하지만, 익스프레션 크루의 공연이 지속 가능한 프로젝트가 되기를 누구보다 희망하기에 몇 가지 쓴소리를 좀 해본다. (필자와 의견을 달리한다면 댓글이나 트랙백으로 대화하기를 원합니다.)
 

 

① 누구를 타겟으로 하는 공연인가?

 

오늘 필자는 세 사람과 함께 공연을 관람했다. 벌써 우리 그룹만 하더라도 10대, 20대, 30대, 40대가 각각 한 명씩 있었다. 공연 시작 전에 대충 훑어보니 20대-30대-10대-40대 이상의 순으로 앉아 있었던 것 같다. 다양한 연령대가 골고루 들어오고 함께 즐길 수 있다는 점은 일견 행복한 일이다. 다양한 연령대가 볼 수 있다는 것은 온가족이 함께 와서 즐길 수도 있고, 연인들끼리 와서 즐길만한 수준이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 같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에 허점이 있을 수 있다. 이 작품의 입장료를 생각하면 이러한 우려는 현실로 드러날 수도 있다. 전좌석 3만 5천원(평일은 24,500원)이라는 입장료는 결코 만만한 가격이 아니다. 물론 다른 뮤지컬 공연이나 같은 비보이 공연과 비교했을 때에는 오히려 저렴한 편이긴 하지만 일반 소극장 연극에 비해서는 두 배 이상 비싼 것이 사실이다. 비보이 공연 입장료가 비싸면 안된다는 것은 아니다. 무대 위에서 흘리는 땀의 양으로 보자면 비보이는 충분히 많은 입장료를 받을 자격이 있다. 그러나 현재 가격으로 서민 4인 가족이 부담없이 공연을 관람할 수 있을까? 현재의 완성도로 가족 단위 ‘공연’ 문화 생활을 즐기는 중산층 이상의 관객을 만족시킬 수 있을까? 그들에게 LG 아트센터에서 B석이면 3층에 해당하니까 얼굴 표정 구경하기는 포기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4만원으로 매튜본의 <백조의 호수>와 <마리오네트> 중에서 선택하라면 선뜻 <마리오네트>를 택하지 못할 것이다. 현재 가격은 대중문화 취향에 익숙한 서민들에게는 부담스러운 가격이고, 문화적 중산층 이상에게는 가격대비 만족도가 기대에 못 미치는 애매한 상황인 것이다. (글 말미에 입장료 비교 자료 첨부)

 

줄거리에도 문제가 있다. 마리오네트의 줄거리는 동화에 가깝다. 초등학교 저학년 정도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이고, 중학생만 되더라도 유치하다거나 무언가 이치에 맞지 않는 점이 발견되는 수준의 이야기이다. 이야기 자체는 초등학생에게 맞춰져 있는데, 과연 이 작품이 초등학생들 보기에 적절한가. 아마 초등학생 자녀와 함께 관람하러 온 부모님들은 이 작품을 보고 나서 우리 아이들에게 교육적으로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지는 않았을 것 같다. 우선 당장에 우리 아이에 공부 때려 치고 이거 하겠다고 하면 어떻게 할까 걱정스러울 것이다. 당장에 공연이 끝나고 공연장 밖 로비에서는 풍선을 들고 의자를 붕붕 뛰어 넘으며 여운을 달래는 꼬마 친구를 발견할 수 있었다. 엄마가 이런 걱정을 하기 시작하면 과연 입소문이 퍼질 수 있을까. 또 하나 이야기 자체는 동화에 머물고 있지만 그걸 표현하는 수준은 다분히 공연자들 자신 즉 20대 이상이 즐길만 한 수위를 넘나든다. (요즘은 초등학생들도 섹시하다는 말을 거리낌 없이 사용한다고 하니 필자가 너무 꽉 막힌 시각으로 말하는 것인지 모르겠으나 섹스 어필하는 내용이 꽤나 빈번하게 등장하고 있다.) 또 한편으로 안무를 담당하는 ‘막둥이’ 이우성 단장 자신의 연령에 맞춘 춤들도 자주 등장한다. 마이클 잭슨에 대한 오마주라 할 만한 문워크(moon walk), 린(lean) 같은 동작, 이 단장이 나중에 롤러 스케이트를 타고 나오고 고고장 분위기를 내는 것 등은 30대 이상이나 그 맛을 알 수 있는 코드라 할 수 있다. 좋게 말하면 다양한 연령층이 각기 다양하게 즐길 수 있는 종합 선물 세트이고, 나쁘게 평가하면 누구도 온전히 즐길 수 없는 잡탕이다. 철저히 어린이를 위한 작품을 만들지 않겠다면 (이것 자체도 위에서 말한 엄마의 걱정 때문에 성공하기 쉽지 않을 것 같지만) 최소한 줄거리의 난이도는 중학생 수준으로 올리는 것이 적합할 것 같다.

 

② 지나친 자막 사용의 문제

 

이 부분은 지난번 감상에도 지적했던 문제이다. 대사로 줄거리를 전달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환등기로 줄거리를 ‘쏘아’ 주는 방식은 어쩌면 불가피하기에 괜한 딴지일 수도 있다. 그러나 관객의 입장에서 이건 격렬한 춤으로 한껏 기분이 고조된 상태에서 마치 찬물을 뒤집어 쓴 것처럼 신속히 가라앉게 만든다. 브레히트식으로 말하면 이 지점에서 확실히 소외 혹은 이화효과(Verfremdungseffekt, alienation effect)가 발생하는 것인데, 배우들은 가뿐 숨을 고를 시간적 여유가 필요하겠지만, 그렇다고 관객들마저 김빠지게 하고 또 이걸 십 회 가량 반복해서 지루하게 만드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물론 이야기 자체가 긴 서사로 되어 있기 때문에 ‘말’로 설명하지 않고서는 관객이 이해하지 못한다는 근본적인 문제가 존재한다. 발레에서는 이런 문제를 무시해버린다. 관객더러 사전에 공부하고 오라는 ‘오만한’ 태도를 취하지만 여기에 시비를 걸지 않는다. 사전에 그 정도는 숙지하고 있는 게 문화적으로 고상한 관객의 수준이라 다들 생각하기 때문이다. 대중 관객을 지향하는 <마리오네트>가 이런 방식을 따라갈 수는 없다. 작품을 모두가 아는 내용으로 바꾸지 않는 한 현재 줄거리는 ‘말’로 전달하지 않을 방법이 없다. 필자는 두 가지 정도 대안을 생각해 보는데, 한 가지는 설명을 최소한으로 줄이는 것이다. “옛날에 누가 어디에서 어떻게 살았는데...” 이런 식으로 일일이 설명하려 들지 말고, 작품 시작하기 전에 줄거리를 쭉 한번 보여주고 (<스타워즈>의 도입부를 상기하라) 장면 사이 사이에 다음 장면을 대표할 사이 사이 짧은 제목만 제시하는 것이다. 나머지는 관객의 상상력과 팜플렛에 과감히 맡겨도 된다! 아니면 굳이 친절하게 설명을 해야겠다면, 그림과 자막 대신 다른 ‘공연적’ 방법을 도입해보는 건 어떠한가. (이 부분도 이미 지난 번 글에서 제안했었는데) 비트박스 옆에 랩퍼 한명 세워서 랩으로 줄거리를 알려주는 것이 훨씬 현장감 있고 덜 지루할 것이다. 세련된 영상미에 익숙한 요즘 관객들에게 지금 수준의 그림과 글은 KBS 만큼의 감동을 주지도 못할뿐더러 현란한 춤사위에 대비된 글씨는 흡사 벌거벗겨진 것 같은 초라함이 느껴진다. 무엇보다 비싼 돈 내고 들어온 관객들은 계속 되는 암전과 환등기 영상을 원하지 않는다!

 

③ 인형사 배역은 B-boy에게!

 

인형사는 이 작품에서 매우 중요한 인물이다. 인형들과 달리 인형사는 단독적인 춤(獨舞)을 춘다는 점에서 프리모 발레리노(primo ballerino)에 견줄 만큼 중요한 배역이다. 문제는 현재 <마리오네트>의 프리모 발레리노가 B-boy가 아니라는 데 있다. 이우성 단장은 비보이라기 보다는 이제 O-boy, 올드보이 아닌가. 그가 자신의 체력적 한계로 인해 에어트랙을 하지 못하고 팔 동작 만으로 감정 표현을 하는 것이라면, 단원 중 가장 실력이 탁월한 사람에게 인형사 자리를 내어 주고, 자신은 안무와 연출에 보다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단장 스스로가 극본․연출․안무․음악 등 전 분야를 책임지는 것이 대단한 일이기도 하고 존경할 만한 일이지만, 이런 식으로는 아마추어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다. 매회 공연 작품 전체를 비평할 수 있는 위치에 있기 위해서도 이 단장은 인형사 배역을 포기하는 용단을 내리라. 인형사의 내적 고뇌도 최고 수준의 비보잉으로 표현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참고. <마리오네트> 가격 비교 (2007년 3월 2일 기준)
<렌트> R석:40,000 S석:35,000
<라이언 킹> 사파리석:90,000 / S석:90,000 / A석:70,000 / B석:50,000 / C석:35,000
<올 슉업> R석:80,000 / S석:60,000 / A석:40,000
<로미오와 쥴리엣> R석:150,000 / S석:120,000 / A석:90,000 / B석:70,000 / C석:50,000

<백조의 호수> R석:100,000 / S석:80,000 / A석:60,000 / B석:40,000 (매튜본, LG아트센터)
<백조의 호수>  R석:50,000 / S석:40,000 / A석:30,000 / B석:20,000  (유니버설 발레단, 오산문화회관)

<비보이 코리아> VIP석:50,000 / R석:40,000 (청소년 50% 할인)

<굿모닝 비보이> R석:45,000 / S석:35,000
<마리오네트> 전석 35,000 (평일 30% 할인 - 24,500)

<하륵이야기> R석:30,000 / S석:20,000 / A석: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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