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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리 조지, <호텔 르완다> 2004 (2007) 본문

영화

테리 조지, <호텔 르완다> 2004 (2007)

알 수 없는 사용자 2012. 6. 7. 05:35



호텔 르완다 (2006)

Hotel Rwanda 
9.3
감독
테리 조지
출연
돈 치들, 호아킨 피닉스, 닉 놀테, 소피 오코네도, 데이비드 오하라
정보
전쟁, 드라마 | 영국, 이탈리아, 미국, 남아프리카공화국 | 121 분 | 2006-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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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리 조지, <호텔 르완다> 2004

 

제목만 들어서는 시카고의 "호텔 캘리포니아"라든지 한국 영화 <모텔 선인장>의 사촌뻘 되는 것 아닌가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다. 그런데 르완다라.. 아프리카 어디인거 같은데 도대체 어디에 있는 나라인가? 시사에 밝은 사람이라면 르완다 내전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겠지만, 주위에서 르완다라는 나라에 관심 가지고 있는 사람을 만나보긴 힘들 것이다. 그러나 불과 몇년만에 총과 칼로 1백만 가까운 사람이 죽임당한 역사에 대해 누구라도 한 번쯤 진지하게 살펴보아야 하는 것 아닐까?

 

르완다는 아프리카 중앙에 위치한 작은 나라로 왼편으로는 콩고민주공화국(DRC)과 오른편으로는 탄자니아합중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다. ( http://maps.google.com/?ie=UTF8&om=1&z=5&ll=-3.381824,30.19043&spn=28.354128,27.202148 참조) 1962년까지 벨기에의 식민지로 있다가 독립했는데, 독립후 다수인 후투족이 정권을 획득하면서 소수민족이자 벨기에 식민지 시대 당시 지배 계층으로 선택된 투치족과의 내전이 발발하게 되었다. 영화 <호텔 르완다>는 여기 르완다공화국에서 1994년에 일어난 대학살 사건을 배경으로 하면서 르완다의 수도 키갈리에 있는 벨기에 소유의 고급 호텔 '밀 콜린스'의 총지배인(house manager)이었던 폴 루세사바기나가 겪은 끔찍한 사건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 자신은 후투족이지만 그의 부인은 투치족이기에 그는 후투족의 정치 세력화(Hutu Power)와 투치족에 대한 말살 정책에 호응하지 않는다. 다만 자신의 가족을 보호하기 위해 후투족 유력 인사들에게 시시 때때로 뇌물과 선물을 제공하여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고 있었다. 두 종족간의 평화 분위기가 조성되던 가운데 갑작스레 투치 반군에 의해 대통령이 탄 비행기가 공격을 받아 대통령이 암살되자, 후투족은 본격적인 인종청소에 들어간다. 폴은 처음에는 자신의 가족을 보호하고자, 그리고 자기 아내의 간청에 마지못해 투치족 사람들을 떠맡게 된다. 무차별적인 학살이 자행되지만 기다리던 UN 평화유지군이나 프랑스, 벨기에 등 서방의 간섭(intervention)은 일어나지 않는다.


폴은 길거리 학살 장면을 촬영해 온 외신 기자-살찐 호아킨 피닉스가 연기한-에게 그런 장면을 보아야 세상 사람들이 알고 개입할 것 아니냐고 말하지만, 잭은 이렇게 대답한다. 사람들이 이 장면을 보고는..."오 저런, 저렇게 잔인할 수가" ... 그렇게 말하곤 저녁식사를 할지도 모릅니다. 프랑스는 후투족을 후원하고 있으며 소수의 군대를 파견해 호텔에 투숙하고 있던 외국인들을 소개(evacuatiion)할 뿐 검둥이이자 아프리칸인 그들의 피에는 관심이 없다.

 

내가 이 작품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리처드 셰크너의 『퍼포먼스 연구 Performance Studies: an Introduction』라는 책을 읽는 데서 시작되었다. 저자는 "연행이 지식과 권력의 주요한 자리를 점유하게 되었다"고 지적하면서 개입(intervention)의 문제에 대해 이야기 하기 시작한다:


이처럼 상대적으로 새로운 상황과 관련하여, 많은 윤리적 문제들이 적나라하게 미해결인 채로 남아있다. 가장 중요한 관심사가 (생물학적·군사적·문화적인) “개입”이다. 만약 그럴 수 있다면, 언제 무력이 사람들을 “구하”거나 “보호하는” 데에 사용되어야 하는가 ― 또한 코소보에는 되지만 수단에는 안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누가 긍정 또는 부정을 말할 권리 혹은 책임을 가지고 있는가? 유전적인 간섭에 대하여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질병을 예방하거나 치료하는 것이나 수확량을 증대시키는 것에 누가 반대할 수 있는가? 그러나 인간 복제는 어떠한가? 아니면 사람의 유전 형질을 수정하는 것에 대해서는 어떠한가? “질병”은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어떤 형질이 “나쁜” 것인가? (Schechner, 2nd ed. p. 26 인용자 밑줄 추가)


이 책의 초판과 개정판을 비교하여 보던 중 내가 발견하게 된 것은 위의 개정판 인용에서 수단이라는 나라가 초판에서는 르완다였다는 것이다. 르완다 사태는 2005년 출간된 개정판에서는 더이상 이슈가 되지 않는 종결된 사례(closed case)임을 시사하는 이 같은 변화가 도대체 무슨 의미를 지니고 있는가하는 데에 궁금증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그 때까지 "안 되던" 개입이 2002년 이후에 되었기 때문이란 말인가? 영화의 마지막 자막은 다음과 같이 이 사태의 결말을 알려준다.


폴 루세사바기나(Paul Rusesabagina)는 1268명의 투시인(Tutsi)과 후투(Hutu) 난민들을 키길리(Kigali)에 있는 밀콜린스 호텔(the Milles Collines Hotel)에서 보호해줬다. 폴과 타티나아는 현재 벨지움(Belgium)에서 아이들, 로저, 다이안, 리스,트레서, 그리고 조카 에나이스, 캐린과 같이 살고 있다. 타티아나의 오빠 토마스와 그의 아내 페덴스는 찾을 수 없었다. 2002년, 어거스틴 비지문구 장군(General Augustin Bizimungu)은 앙골라에서 잡혀 탄자니아로 이송, 유엔 전범 재판에 회부되었다. 모든 인터함웨(the Interhamwe)의 리더들과 죠지 루타간다(George Rutaganda)도 재판을 거쳐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수감됐다. 투시 반군이 후투 정규군과 인터함웨 시민군을 국경넘어 콩고로 몰아낸 후 인종 학살은 1994년 6월에 종식됐다. 이 민족갈등의 내전은 거의 백만명의 주검을 남겼다. (네이버 영화에서 인용: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39813)


2002년 UN 전범 재판에 회부됨으로써 이 사건은 마무리 지어진 것인데, UN이 이들을 전범으로 회부하고 이들을 처벌할 의지가 있었다면 8년전 백만명이 죽어나가던 당시에는 아무런 개입도 하지 않았던 것일까.

 

셰크너는 위의 책의 1장의 결론을 다음과 같이 매듭짓고 있다: "수단을 가진 자들은 “인간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하여 개입해야만 하는가 아니면 어떤 대가를 치루더라도, 지역의 문화적 자율성을 존중해야만 하는가? (p. 26)" 이 영화가 폴 루세사바기나의 헌신적인 노력을 아름답게 그리고 있어서 <쉰들러 리스트>와 한핏줄 영화로 연결지어지기도 하지만, 나로서는 이들이 처한 탈식민적인 상황이 너무나도 비극적으로 다가온다. 이들의 피는 과연 서양인들이 싸질러 놓은 똥을 치우는 값일까 아니면 아프리카인들은 본래 호전적이고 종족간에 싸우길 좋아하는 것일까? 대한민국의 친일파 청산이 흐지부지 될 수 있었던 중요한 원인은 우리가 한 피를 공유하는 단일민족이기 때문일까?

 

 

참고.

Wikipedia contributors, "Rwanda," 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 http://en.wikipedia.org/w/index.php?title=Rwanda&oldid=121755924 (accessed April 11, 2007).

Schechner, Richard, Performance studies : an introduction, 2nd ed. Routledge, 2006; Performance studies : an introduction, Routledge, 2002.

"호텔 르완다", 네이버 영화,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39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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