客記

《적도 아래의 맥베스》의 무게감 본문

공연

《적도 아래의 맥베스》의 무게감

스테레오 2010. 10. 8. 01:29

내 나라가 힘이 약해 남의 나라에 점령당한 것도 모자라, 남의 나라 전쟁에 강제로 끌려가야 했다면 그것보다 서러운 일이 또 있을까? 그런데 작가는 이 사람들 중에 전쟁이 끝나고, 나라가 광복을 얻은 다음에 더 기막힌 일을 겪은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적도 아래의 맥베스》에서는 강제 징용 되어 끌려간 조선 사람들이 전쟁 종전 이후 B,C 급 전범으로 분류되어 형무소에서 사형을 당한 기가막힌 사연을 다루고 있다. 

이들은 싱가포르 형무소에 갇혀 있으면서 간간히 '마크베스Macbeth' '마크더프Macduff'를 대뇌이거나, 부치지도 못할 어머님 전상서를 쓰며 시간을 보낸다. 그리고, 자기 차례를 기다린다. 이 사람들의 삶은 너무나도 억울하고 또 부조리하다. 드디어 고향집에서 여동생이 보낸 편지를 받아 보고 석방의 희망을 품던 사람에게는 다음날 아침 사형이 통보되고, 혹시라도 어머니가 자기 편지를 읽고 충격을 받으실까 전전긍긍하는 젊은 남자에겐 어머니의 자살 소식이 전해진다.  

줄거리 만으로는 이보다 더 슬프고 안타까운 이야기를 찾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또한 그동안 한국 사람들에게 조차 관심의 대상이 되지 못하던 조선인 전범에 대한 사연을 무대극의 형식으로나마 접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에서 작가의 노력이 값지다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애시당초 너무나도 명확한 정서를 다루고 있다보니, 작품의 시작에서 끝까지 같은 공간을 뱅글뱅글 돌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이러한 소재의 이야기에서 연극적 재미를 추구하는 것이 불경스러운 것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하지만, 관객이 공연을 통해 새롭게 받게 되는 것보다 초기에 설정된 감정선이 지속되는 경향을 보이다 보니 공연이 단조롭고 지루하게 느껴진다. 아무리 슬픈 내용이라고 하더라도 관객이 즐길 요소가 있어야 하고, 슬프지 않은 것을 통해 슬픔을 전달해야 보다 큰 공감을 얻을 수 있을 텐데, 이러한 시도는 찾아보기 어렵거나 상투적인 데 머물고 말았다. 이야기의 무게에 작가, 연출, 배우 모두가 눌려 버린 것 같다.

10월 14일까지 명동예술극장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