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客記
https://youtu.be/lhW_tRmpLFs 중국 출신의 세계적 피아니스트 랑랑이 무대에서 연주를 시작한다. 연주곡은 리스트의 사랑의 꿈 제3번. 연주회장은 언제나 그렇지만 조용한 곡이기에 청중은 더욱 숨죽여 랑랑의 연주를 듣는다. 그런데 연주 도중 갑자기 청중들이 환호를 한다. 박수가 들리기도 한다. 클래식 공연장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관객에게도 그리고 연주자에게도. 아무리 좋은 연주라도 관객이 함성이나 박수로 연주자를 방해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이번 경우엔 연주자가 방해를 받지 않는다. 피아노를 직접 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연단 위 피아노는 랑랑의 손이 건반을 누르지 않는데도 스스로 연주를 한다. 스타인웨이 스피리오라는 이름의 이 피아노는 랑랑이 공연 전 어느 시점에 했던 연..
좋아요, 마음(❤), 리트윗 등등 SNS가 우리에게 주는 보상을 멀리하자. 그리고 고독을 마주하자. 요즘 내가 반복해서 하는 다짐이다. 지금도 페이스북은 항상 이용자에게 묻는다: 000님,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신가요? 나는 이 질문을 순진하게도 오랫동안 곧이 곧대로 받아들였고, 종종 요즘 하는 생각을 쓰곤 했다. 그런데 시간이 가면 갈수록 SNS는 생각을 나누기 적합한 플랫폼이 아니라는 것만 반복해서 확인하게 된다. 실컷 쓴 내 생각이 다른 사람들의 타임라인 속에 파묻히는 데까지는 하루도 걸리지 않는다. 이 거센 타임라인 조류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더 많은 좋아요와 공유, 댓글 등을 얻어야 한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글쓴이가 이미 인지도가 있는 인플루언서이거나, '듣보잡'이라면 소위 '바이럴'한 내용..
서양 사상과 문화의 기반이 되는 고대 그리스의 철학과 예술은 뛰어난 철학자와 예술가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겠지만, 그 뒤에서 그들을 위해 봉사하던 노예가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역사상 가장 늦은 시점까지 노비를 두고 있었다는 우리 전통 사회도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 같다. 물론 현재도 제도는 사라졌어도 계급이 실질적으로 작동하고 있는 만큼 창조적인 활동을 하는 '자유인'과, 창조적 활동을 양보하고 '자유인'의 모든 자질구레한 일들을 다 담당해주는 '도우미'의 구분은 일부 사람들에게는 여전하다. 문제는 창조적인 활동과 더불어 일상의 지리멸렬한 일들을 모두 감당해야 하는 '보통' 사람들이다. 그들에게는 잡일과 창조적인 일이 함께 주어진다. 아니 어쩌면 두 가지는 구분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예를 들어 (예..
최근 영화 를 보면서 한 가지 편안함을 느꼈다. 영화 속 자동차 PPL이 없다는 점이었다. 소위 액션 블록버스터 영화에는 으레히 자동차 추격 장면이 나오고, 그럴 때면 고성능 자동차들이 나오기 마련이다. 그러다 보니 액션 영화는 자동차 브랜드 입장에선 자사의 자동차의 성능이 우수하다는 인상을 심어주기 아주 좋다. 영화 속 수퍼 히어로 만큼이나 자동차도 수퍼 파워를 가진 것 같은 이미지가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이렇게 시작된 영화 속 자동차 PPL은 종종 너무 노골적일 때가 있는데, 해당 브랜드의 최신형 자동차를 그것도 종류 별로 전시하기에 이르렀다. 이런 캠페인은 사실 연속극 드라마에서 더 자주 발견된다. 한편으론 이해 못할 일도 아니다. 여러 브랜드에서 협찬을 받아올 수 없으니 한 브랜드의 차가 나오는 ..
한 은행에서 ‘나는 언제 부제가 되지?’라는 질문을 광고에 담은 걸 보았다. 20여년 전 ‘부자되세요’라는 새로운 덕담을 전국적으로 유행시켰던 그 광고가 생각났다. 차이가 있다면 이번 광고의 타겟은 2030이라는 점이다. 누구나 언제나 부자가 되고 싶어한다. 하지만 부자는 바람만으로 될 수 없는 것이기에 광고는 노골적으로 이 말을 노골적으로 꺼내는 경우는 드물다. 부자를 쉽게 약속했다간 상품의 신뢰마저 얻지 못하기 때문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부자를 직접 언급하는 광고가 되돌아왔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성공한 광고의 후광을 이용하려는 광고주와 대행사의 궁여지책이거나, 부자라는 말이 욕망의 수면 위로 올라와야할 만큼 시대가 궁핍한 것이거나, 혹은 그 둘이 합쳐진 것일 수 있다.
코로나 이후 열리는 올림픽 경기를 보면 올림픽이 예전같지 않음을 확실히 알 수 있다. fair play 라는 스포츠 정신을 통해 감동을 얻는 것이 아니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기면 된다는 국가적 경쟁이 펼쳐지는 광경을 낯뜨겁게 바라봐야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국가간 대항이라는 포맷과 개최국의 자존심이 걸려 있다는 낡은 인식으로부터 노골적인 반칙이 행해지고, 상위권 선수들이 어처구니 없는 실격을 당하는 일이 연일 일어난다. 왜 이 광경을 전세계 사람들이 지켜봐야 한단 말인가. 올림픽이 본래 스포츠 정신과 유지하고 스포츠 경기를 통해 우애와 친선, 평화를 증진하기 위해서는 대대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몇 가지를 생각해보았다. 1) 개최국이 출전하지 않는 방안. 개최국이 좋은 성적을 거두어야 한다는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