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客記
I can take any empty space and call it a bare stage. A man walks across this empty space whilst someone else is watching him, and this is all that is needed for an act of theatre to be engaged. 피터 브룩의 The Empty Space를 시작하는 저 유명한 문장에서 ‘to be engaged’란 말을 어떻게 번역해야 할까? 재공연 도입부를 보다가 문득 의문이 생겼다. 리뷰까지 썼던 초연을 보면서는 전혀 이상하게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이다. 이 공연에서는 ‘시작하다’라는 뜻으로 사용했다.어떤 사람이 지나가고 다른 사람이 그것을 바라본다면 그것으로 연극이 ..
인간은 나를 기쁘게 하지 않는다, 혹은 하지 못한다. 햄릿의 말이다. (2막 2장) 요즘 이 말이 내 마음에 가득하다.
https://youtu.be/lhW_tRmpLFs 중국 출신의 세계적 피아니스트 랑랑이 무대에서 연주를 시작한다. 연주곡은 리스트의 사랑의 꿈 제3번. 연주회장은 언제나 그렇지만 조용한 곡이기에 청중은 더욱 숨죽여 랑랑의 연주를 듣는다. 그런데 연주 도중 갑자기 청중들이 환호를 한다. 박수가 들리기도 한다. 클래식 공연장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관객에게도 그리고 연주자에게도. 아무리 좋은 연주라도 관객이 함성이나 박수로 연주자를 방해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이번 경우엔 연주자가 방해를 받지 않는다. 피아노를 직접 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연단 위 피아노는 랑랑의 손이 건반을 누르지 않는데도 스스로 연주를 한다. 스타인웨이 스피리오라는 이름의 이 피아노는 랑랑이 공연 전 어느 시점에 했던 연..
좋아요, 마음(❤), 리트윗 등등 SNS가 우리에게 주는 보상을 멀리하자. 그리고 고독을 마주하자. 요즘 내가 반복해서 하는 다짐이다. 지금도 페이스북은 항상 이용자에게 묻는다: 000님,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신가요? 나는 이 질문을 순진하게도 오랫동안 곧이 곧대로 받아들였고, 종종 요즘 하는 생각을 쓰곤 했다. 그런데 시간이 가면 갈수록 SNS는 생각을 나누기 적합한 플랫폼이 아니라는 것만 반복해서 확인하게 된다. 실컷 쓴 내 생각이 다른 사람들의 타임라인 속에 파묻히는 데까지는 하루도 걸리지 않는다. 이 거센 타임라인 조류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더 많은 좋아요와 공유, 댓글 등을 얻어야 한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글쓴이가 이미 인지도가 있는 인플루언서이거나, '듣보잡'이라면 소위 '바이럴'한 내용..
섹스는 코미디에서 아주 중요한 소재다. 성욕은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욕구 중 하나이고, 그래서 가장 강력한 억압이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일어나기 때문이다. 정신분석의 초기부터 프로이트가 농담에 대해 다룬 이유도 바로 성욕 때문이었다. 코미디 영화에, 특히 성인들을 위한 코미디에는 웃음 보증 수표인 섹스가 빠지기 어렵다. 그건 마치 차포 떼고 장기를 두는 것과 마찬가지일 테니 말이다. 하지만 섹스 코미디, 즉 섹스를 중심에 놓고 하나의 코미디를 펼쳐 나가는 것은 쉽지만은 않은 선택이다. 어쩌면 그것은 마치 운명에 대해 본격적으로 이야기하는 비극 만큼이나 정면 승부에 가깝다. 2005년 영화 는 그런 측면에서 뻔하지만 대담한 영화다. 안 봐도 이 영화의 줄거리와 결말은 대충 짐작이 간다. 나 역시 코미디 ..
서양 사상과 문화의 기반이 되는 고대 그리스의 철학과 예술은 뛰어난 철학자와 예술가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겠지만, 그 뒤에서 그들을 위해 봉사하던 노예가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역사상 가장 늦은 시점까지 노비를 두고 있었다는 우리 전통 사회도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 같다. 물론 현재도 제도는 사라졌어도 계급이 실질적으로 작동하고 있는 만큼 창조적인 활동을 하는 '자유인'과, 창조적 활동을 양보하고 '자유인'의 모든 자질구레한 일들을 다 담당해주는 '도우미'의 구분은 일부 사람들에게는 여전하다. 문제는 창조적인 활동과 더불어 일상의 지리멸렬한 일들을 모두 감당해야 하는 '보통' 사람들이다. 그들에게는 잡일과 창조적인 일이 함께 주어진다. 아니 어쩌면 두 가지는 구분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예를 들어 (예..
최근 영화 를 보면서 한 가지 편안함을 느꼈다. 영화 속 자동차 PPL이 없다는 점이었다. 소위 액션 블록버스터 영화에는 으레히 자동차 추격 장면이 나오고, 그럴 때면 고성능 자동차들이 나오기 마련이다. 그러다 보니 액션 영화는 자동차 브랜드 입장에선 자사의 자동차의 성능이 우수하다는 인상을 심어주기 아주 좋다. 영화 속 수퍼 히어로 만큼이나 자동차도 수퍼 파워를 가진 것 같은 이미지가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이렇게 시작된 영화 속 자동차 PPL은 종종 너무 노골적일 때가 있는데, 해당 브랜드의 최신형 자동차를 그것도 종류 별로 전시하기에 이르렀다. 이런 캠페인은 사실 연속극 드라마에서 더 자주 발견된다. 한편으론 이해 못할 일도 아니다. 여러 브랜드에서 협찬을 받아올 수 없으니 한 브랜드의 차가 나오는 ..
한 은행에서 ‘나는 언제 부제가 되지?’라는 질문을 광고에 담은 걸 보았다. 20여년 전 ‘부자되세요’라는 새로운 덕담을 전국적으로 유행시켰던 그 광고가 생각났다. 차이가 있다면 이번 광고의 타겟은 2030이라는 점이다. 누구나 언제나 부자가 되고 싶어한다. 하지만 부자는 바람만으로 될 수 없는 것이기에 광고는 노골적으로 이 말을 노골적으로 꺼내는 경우는 드물다. 부자를 쉽게 약속했다간 상품의 신뢰마저 얻지 못하기 때문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부자를 직접 언급하는 광고가 되돌아왔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성공한 광고의 후광을 이용하려는 광고주와 대행사의 궁여지책이거나, 부자라는 말이 욕망의 수면 위로 올라와야할 만큼 시대가 궁핍한 것이거나, 혹은 그 둘이 합쳐진 것일 수 있다.
나는 한재림의 영화를 징검다리 건너듯 뜨문뜨문 본 셈이지만 그동안 본 영화로도 그가 우리 시대 혹은 한국 사회에 대한 통찰을 영화에 녹여내는 재능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가장 많은 사람들이 본 이라는 영화가 바로 그 통찰을 주제로 하고 있다. 정작 이 영화에서 주인공은 자신이 사람의 얼굴은 봤지만 시대의 모습을 보지 못했음을 한탄하지만, 한재림은 그 대사를 통해 세상 읽기의 중요함을 역설하고 있었다. 한재림의 세상 읽기는 에서 더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세부 내용을 떠나 검찰이 공권력의 실세로서 나라를 쥐고 흔든다는 걸 전면에 대담하게 제시한 이 영화는 8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 역사극의 외양을 갖추고 있지만 실제로는 개봉 이후 한국 사회를 내다보고 있는 듯한 생각마저 들게 한다. 2017년에 이미 검사와..
사실 원작 소설을 읽지 않았지만, 이야기가 새로울 건 없었다. 이 작품이 다루고 있는 장기 기증에 대한 이야기는 ‘슬의생’이나 ‘유퀴즈’에서도 다루었을 만큼 ‘흔한’ 이야기지 않은가. 하지만 흔하다는 말은 필멸의 인간이 이 주제에 대해 감히 붙일 수 있는 말은 아닌 것 같다. 더군다나 이 사건에 관여한 사람들 각자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동안 나는 아주 넓은 스펙트럼의 감정을 경험할 수 있었다. ‘보편적인’ 이야기가 가진 힘이 있었다. 공연을 보면서 내가 이 문제를 진지하게 생각해보지 않았음을 발견했다. 어떤 대사 때문이었다. 정확하지 않지만 기억에 남아 있는 대로 옮겨 본다. “환자 누구라도 자신에게 적합한 장기를 기증 받을 수 있다면, 그것이 환자의 권리라면, 논리적으로 볼 때 우리 모두에게는 장기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