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영화 (35)
客記
섹스는 코미디에서 아주 중요한 소재다. 성욕은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욕구 중 하나이고, 그래서 가장 강력한 억압이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일어나기 때문이다. 정신분석의 초기부터 프로이트가 농담에 대해 다룬 이유도 바로 성욕 때문이었다. 코미디 영화에, 특히 성인들을 위한 코미디에는 웃음 보증 수표인 섹스가 빠지기 어렵다. 그건 마치 차포 떼고 장기를 두는 것과 마찬가지일 테니 말이다. 하지만 섹스 코미디, 즉 섹스를 중심에 놓고 하나의 코미디를 펼쳐 나가는 것은 쉽지만은 않은 선택이다. 어쩌면 그것은 마치 운명에 대해 본격적으로 이야기하는 비극 만큼이나 정면 승부에 가깝다. 2005년 영화 는 그런 측면에서 뻔하지만 대담한 영화다. 안 봐도 이 영화의 줄거리와 결말은 대충 짐작이 간다. 나 역시 코미디 ..
나는 한재림의 영화를 징검다리 건너듯 뜨문뜨문 본 셈이지만 그동안 본 영화로도 그가 우리 시대 혹은 한국 사회에 대한 통찰을 영화에 녹여내는 재능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가장 많은 사람들이 본 이라는 영화가 바로 그 통찰을 주제로 하고 있다. 정작 이 영화에서 주인공은 자신이 사람의 얼굴은 봤지만 시대의 모습을 보지 못했음을 한탄하지만, 한재림은 그 대사를 통해 세상 읽기의 중요함을 역설하고 있었다. 한재림의 세상 읽기는 에서 더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세부 내용을 떠나 검찰이 공권력의 실세로서 나라를 쥐고 흔든다는 걸 전면에 대담하게 제시한 이 영화는 8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 역사극의 외양을 갖추고 있지만 실제로는 개봉 이후 한국 사회를 내다보고 있는 듯한 생각마저 들게 한다. 2017년에 이미 검사와..
1. 옥상문은 잠그면 안 된다. 2. 대학 동아리는 중요하다.
예고편이 공개되면서 너도 나도 예측을 하는 듯 하여 나도 예상 비슷한 걸 남겨본다. 혹시라도 큰 기대를 하고 들어온 분이 있다면 별 거 없음에 미리 사과 드린다. 이 와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는 점을 우선 생각한다면 를 복기해 볼 필요가 있다. 줄거리를 요약할 필요는 없지만, 가 무엇을 반복적으로 보여주었는지를 생각해보면 아주 선명한 대비를 발견할 수 있고, 그것이 이 영화의 주제라고까지 말할 수 있겠다. 이 영화에서는 어벤져스 영웅들과 타노스를 구분짓는 한 가지를 아주 분명히 드러낸다. 타노스는 소울 스톤을 얻기 위해 사랑하는 사람을 희생해야 하는데(우리말 자막에서는 '가장 사랑하는'이라고 했지만 영어 대사에서는 '가장'이란 말은 없었다), 이때 자신이 사랑하는 딸 가모라를 절벽에 던져 희생시키고 스톤을..
액션이 부족하다고 느낀 관객이 적지 않다. 기존 마블 영화 팬들이 그렇게 느끼는 걸 어찌 막겠는가? 허나 액션을 원한다면 애초 마블이 아니라 성룡, 이연걸, 견자단, 그리고 톰 크루즈를 추천하고 싶다. 무엇보다 어벤져스가 무엇을 위해 싸우는지 되짚어야 한다. 그들이 싸우는 목적이 그저 싸움 구경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정의를 위해,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라면이 일을 나름 성실히 해내고 있는 이번 영화를 반기는 게 맞지 않을까?더불어 남초/여초 커뮤니티의 상대 진영에 대한 조롱과 비아냥이 우려스럽다. 정치는 상대편도 내 편으로 만드는 기술이어야 하는데 지금의 언술들은 대체로 상대편을 결집시키는 데 더 효과적인 것 같다. 사족퓨리가 구스의 정체를 알고..
미국에서 활동하는 한국계 배우 켄 정에 대한 관심으로 보게 되었다. 10년이 지난 영화다보니 넷플릭스에 이미 세 편이 다 올라와 있는 상황이다. 1편은 꽤 흥미로웠다. 총각 파티는 우리에겐 낯선 문화이지만 미국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 어느 정도 친숙해진 통과의례(?)라 상황을 파악하는 데 어려움은 없다. 예상되는 광란의 밤을 훅 건너뛰고 다음날 모든 게 엉망이 되어 있는 상태에서 깨어나 뒷수습을 하면서 전날 밤 무슨 일이 있었는지 하나씩 찾아가는 형태로 플롯이 구성되어 있는 점이 흥미롭다. 전형적인 추리극의 방식이라 할 수 있고, 최종 결말도 김전일이나 셜록홈즈 등에서 봐왔던 방식과 크게 다르지는 않지만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데?"라는 궁금증을 자아내기엔 충분하다. 켄 정의 등장은 소문대로 충격적(..
PG-13 레벨에서 코믹 가족 드라마를 어떻게 써야하는지를 보여주는 모범적인 영화다. 돌이켜보면 상투적인 수법이었단 생각도 들지만 해아래 새 것이 어디 있겠는가. 플롯의 두 축인 엉킴과 풀림을 다양한 가족-이웃-친구 관계에서 만들어내면서 이 이야기가 어떻게 끝날지를 궁금하게 만든다. 작가가 노련하다 싶었는데 Car, Bolt 등 애니메이션의 스크립트를 썼던 작가(Dan Fogelman)다. 노련한 주연 배우들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아들 로비 역의 배우 Jonah Bobo 의 조숙한 중딩 연기를 보고 있기가 즐겁다. 아쉽게도 2012년 이후로는 활동을 하지 않아 그가 어떻게 성장했는지 확인할 방법은 없다.
화장실 코미디의 대가가 만든 드라마 답게 언제 웃겨줄지를 기대하게 만들고 그 기대가 솔찮이 충족된다. 비고 모텐슨은 일부러 살을 찌운 게 아니라 촬영하다가 살이 찐 게 분명하다! 언뜻언뜻 아라곤의 이미지가 나타나는 게 즐겁다. 안두릴의 주인에게 핫도그를 쥐어주다니!!
어디선가 '순전히 송강호를 위한 영화'라는 평을 읽었다. 그 글은 영화에 실망한 사람이 쓴 것이었지만, 대체로 수긍할 만한 평가였고, 송강호 팬에게는 나쁠 게 없는 말이었다. 이 영화가 흥행하지 못한 원인은 만듦새보다 서울 사람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사투리 대사에서 우선 찾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평소 한국 영화 대사를 곧잘 듣는다고 나름 자부하는, 게다가 인생의 반을 경상도에서 살았던, 나 역시 못 들은 대사들이 있었다. 후반부 홀로 고립된 이두삼에게서 맥베스의 고독이 느껴졌다. 이런 걸 좋아하는 나 자신이 약간 변태스럽게 느껴졌다.
얼마 전 본 미국의 어느 대학 국제경영학과 수업 실황 영상에서 교수가 학생들에게 BTS 이야기를 하며 "New Cool"이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을 들었다. 한국을 포함하여 동아시아가 new cool 이니 국제경영학을 하는 학생들은 이 새로운 조류를 잘 알고 거기에 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는 취지의 말이었다. 의 미국내 흥행은 백인 주류 사회가 새로운 쿨함으로 아시아(계)를 주목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또 다른 사례다. 지극히 평범한 로코 줄거리를 따르고 있는 이 이야기가 제작되고 흥행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이 모든 이야기가 화교 사람들에 의해 진행된다는 점이다. 현실에서 브루스 웨인 만큼의 부자가 있다면 그건 아마도 중국계일 것이다라는 이 영화의 발상은 묘한 설득력이 있다. 어쩌면 이 또한 특정 민족에 대한 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