客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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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백년, 바람의 동료들

스테레오 2011. 6. 21. 01:35



지난번 "적도 아래의 맥베스"에서와 마찬가지로 재일교포들의 이야기 앞에서 나는 다소간 방어적인 자세를 취하게 된다. 아마도 나의 삐딱한 성품이 그 첫번째 이유이겠으나, 굳이 이유를 대자면 이야기의 소재가 공연을 보기도 전에 나에게 "연민"을 강요하고 있다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러한 선입견을 흔들어줄 뭔가 '쿨한' 이야기를 내심 기대하는데 막상 그러한 작품은 만나보기 어렵다. 그렇다고 작품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고 선뜻 말하지도 못한다. 분명 찜찜한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이 이야기가 과연 미학적 판단의 대상이 될 수 있는가' 라든지, '이처럼 심각하고 또 해결되지 않은 문제를 가볍게 다룰 수는 없는 것 아닌가'라는 질문을 스스로 던지기 때문이다. 그나마 지난 번에는 "단조롭고 지루하다"라든지, "상투적"이라는 표현을 과감하게 썼지만, 이번에는 이 공연이 그와같은 평가적 어휘들로 서술될 성격인가라는 생각에 주저하게 된다. 그들에겐 이런 말하는 내가, 지난날 그들을 "반쪽*리 빨갱이"라고 불렀던 사람들과 별반 다를바 없는 폭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느껴질 수도 있지 않겠는가?
 

그러나 이들처럼 소외된 사람들의 이야기가 무대에 '계속' 올려지기 위해서는 전달하는 감정의 수위를 적절하게 조절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물론 코러스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든지, '경희' 같은 인물을 통해 관객에게 큰웃음을 선사한 것을 보더라도 관객을 이완시키기 위해 노력한 점이 충분히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만 유독 그런 것일지도 모르지만) 방어적인 자세를 풀기 어려운 이유는, 앞서 언급했듯이, 그들이 지난 세월 동안 겪은 사연에 대한 관객의 표해야할 반응이 연민, 또는 자기 연민으로 고정되어 있다는 점 때문인 것 같다. 어쩌면 작가는 한반도에 있건 일본 열도에서 살건 간에 우리 한국/조선인은 모두가 힘든 세월을 보냈다라는 걸 말하고 싶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명시적으로 말하고 있지는 않지만 뭔가 비교당하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들의 고통에 동참하려는 순간 재일동포가 한국원주민보다 더 어렵게 살아왔다는 걸 인정하라는 것처럼 다가오기도 한다. 또한 민단 계열의 관객이라면, 나로서는 찾아내지 못하는 또다른 이유의 거부감을 느꼈을지 모른다.
 

이 작품은 조총련이든 민단이든, 남한사람이든 북조선 사람이든 간에, 심지어 귀화한 사람까지도 모두 품어내기를 희망하는 큰 사상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이 극을 그들 모두가 함께 볼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다. 아마도 각 집단을 대표할 수 있는 인물이 등장하는 것이 해법일 수도 있겠다. 현재 상태에서는 한쪽 집단만 무대 위에 등장하여 한 편의 시각과 입장만 제시되기 때문에 나머지 집단에 속한 관객들은 온전히 마음을 열고 받아들일 수 없는 것 같다. 일본인 기자는 이러한 맥락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역할이지만, (배우가 아니라) 배역 자체가 안타고니스트 역할을 수행할 힘도 의지도 없어 보인다.

2010/10/08 - [공연 리뷰] - 《적도 아래의 맥베스》의 무게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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