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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우리 읍내

스테레오 2010. 4. 16. 00:58
우리읍내
Our Town
원작: 손톤 와일더(Thornton Wilder)
번역: 오화섭/번안: 오태석
연출: 김한길
2006년 8월 5일 저녁 7시 30분 국립극장 달오름 극장
 
이 작품은 오태석 선생이 국립극장 예술감독으로 취임하고 공연하는 첫번째 작품이라고 한다. 공연을 끝낸 후 로비에서 관객들을 맞고 있는 그의 얼굴을 보았는데, (물론 그는 나를 알지 못하기에 그냥 지나 왔지만) 목에 수건을 두르고 손에는 대본으로 보이는 종이 뭉치를 들고 있는 그의 모습이 TV에서 보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공연 팜플렛을 이용해서 작품의 내용을 잠시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막이 오르면 무대감독의 설명으로 시작되어 197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초까지 경기도 가평 '우리읍내'에서 벌어지는 평범한 이웃들이 등장한다. 시골 의사인 김씨네와 그의 아들 준기, 신문 보급소장인 이씨네와 딸 영희를 둘러싼 이야기가 3막에 걸쳐 펼쳐진다."
 
이 작품은 극중극 형식을 취하고 있으며, 서양 근대의 환영주의적인 연극이 아니라, 작품 속에 무대감독이라는 인물이 해설도 하고 개입도 하고 관객에게 질문도 던지는 등의 일들이 펼쳐지는데, 이런 것들은 오늘날에는 흔히 쓰이는 수법들이지만, 작품이 처음 올려졌던 1930년대에는 상당히 낯선 시도였을 것이다. 무대감독을 하나의 등장인물로 여긴다면, 별도로 막과 막 사이가 구분이 없으므로 단막극이라 할 수도 있지만, 우리는 그의 해설에 따라 이 작품을 3막 구조로 볼 수 있으며, 각 막은 다음과 같은 제목으로 이루어져 있다. 또한 이 구분은 일상, 결혼, 죽음으로 구분된 원작과 동일하다.
 
1막: 우리읍내의 평범한 하루
1970년대 후반. 시골의사인 김씨네와 그의 아들 준기, 신문 보급소장인 이씨네와 그의 딸인 영희를 중심으로 그다지 크지 않은 평범한 우리읍내의 일상이 펼쳐진다.
2막: 준기와 영희의 사랑 그리고, 결혼
3년이라는 시간이 지난 후, 우리읍내의 평범한 일상은 여전하다. 어느덧 커버린 준기와 영희는 사랑을 하고 읍내 사람들의 축복 속에서 결혼을 한다.
3막: 영희의 죽음과 그 후
그로부터 9년, 둘째 아이를 해산하던 영희는 죽고 읍내 공동묘지에 묻히게 된다. 죽은 영희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지난 세월의 흔적과 애틋한 사랑이 아쉽기만 하다.
 
몇몇 가지의 일상적인 에피소드를 보여주다가 3년, 9년의 시간을 훌쩍 넘겨버리는데, 짧은 시간의 공연에서 이렇게 시간이 흘러버리는 경우 혼란스럽거나 집중력이 떨어지기 쉬운데, 이 작품에서는 무대감독의 존재가 바로 이러한 걱정을 해소시켜 주는 역할을 한다. 어쩌면 연극적 관습에서만 이와같은 형식의 이야기 전개가 빛을 발할 수 있을 것 같다. 무대 감독에는 권성덕과 장민호 두 배우가 더블 캐스팅 되었고, 필자가 본 공연에서는 권성덕씨가 연기하였다. 개인적으로는 장민호 선생의 연기를 보고 싶었기 때문에 아쉬움이 남았다. 그의 연기를 볼 수 있는 시간이 이제 그리 많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며, 권성덕씨 역시 노련한 배우로 재미있게 연기하지만, 가끔 대사를 까먹는 듯한 모습을 보여 약간 불안한 면이 있기 때문이다.
 
전체적으로 배우들의 연기와 연출자의 연출 방식이 흥미롭게 볼만한 작품이었다. 희곡 텍스트로 읽을 때 과연 어떤 방식으로 무대에서 구체화될지 궁금했던 부분들이 재미있는 방식으로 그려졌다. 특별히 3막의 공동묘지 장면에서 사자(死者)들이 이야기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아무런 배경없이 배우들이 수의를 걸치고 자리에 정좌하여 앉아 있는 것으로 무덤을 형상화하여 표현하였는데, 아주 적절하고 재미있는 연출이었다고 생각된다. 의사 김씨가 부인의 묘에 와서 풀을 뜻는 시늉을 하고 지나갔는데, 이 장면에서는 풀을 뜻지 말고 머리나 옷자락을 쓰다듬어 정리해주는 방식으로 가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되었다.
 
한편 원작에는 본 작품은 막과 무대 장치가 없다고 명시되어 있다. 의자와 탁자, 사다리 등의 소도구가 전부이며 모든 연기는 그저 하는 시늉만 할 뿐이다. 이를 통해 관객은 지금 눈 앞에 펼쳐지는 것이 허구인 연기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고, 배우의 연기가 주된 초점으로 자리잡게 되는데, 본 공연에서도 원작의 지시를 대부분 따르고 있었다. 다만, 무대에는 원작에 나오지 않는 괘종시계와 피아노가 추가로 놓여져 있었으며, 시계의 경우 작품의 시작부터 끝까지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는데, 작품의 주제를 상징하는 일종의 오브제의 역할을 하고 있었던 게 아닌가 생각된다. 또한 배경에는 커다란 달이 두둥실 떠있고 별들이 필요에 따라 몇차례 빛난다. 이정도의 무대 장치마저 불필요한 것인지 여부는 관람자에 따라 달라지긴 하겠으나, 워낙 무대 장치가 없는 공연이라 그런지, 달과 별이 뜨고 실제로 배우들이 별빛을 바라보는 연기를 하노라면, 관객인 나도 눈이 무대 장치인 별들로 향하게 되는데, 이 지점에서 환영이 깨어지는, 곧 딴생각을 하게 만드는 것 같았다. 딴 생각이란 이런 것이다: '어 저 별 홍콩 침사추이 스타의 거리에 있는 거랑 같은 방식이네' 그러나 이것은 관객의 집중력에 문제를 삼을 수도 있으므로, 이정도 장치는 허용한다해서 문제 삼을 수는 없겠다. 한편, 이와같이 무대 장치를 최소화하고 배우들의 연기로 대체하는 방식은 최근 들어 다양한 실험으로 드러나는데, 그 중에 필자는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도그빌'(DogVille)이나 '만덜레이'(Manderlay)를 주목해 본다. 빈 공간을 상상력으로 채워가는 방식은 영화적인 방식으로도 가능한 것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번안극이지만 평범한 일상생활의 모습을 통해서 삶을 돌아보게 하는 작품의 목적 또는 주제의식은 성공적으로 전달 된 듯하다. 그러나, 1930년대 미국의 정황을 담은 원작을 1970년대 한국을 배경으로 옮기다 보니, 인물의 이름이나, 직업(우유 배달원을 두부 장수로 변경)을 바꾸는 것은 별로 문제가 아닐지 몰라도 몇몇 세부사항들은 혼돈스러운 면들이 없지 않았다. 원작의 마을에는 교회가 그 종파마다 예배당이 있는 기독교 중심적인 사회의 모습을 보여주는데, 1970년대 경기도 가평에서 성가대의 성가연습이 그리 일반적이지도 않고, 또 그 지휘자가 술주정뱅이로 그려지는 것 또한 상상해보기 어려운 상황이기도 하다. 미세한 부분이지만, 이런 문제들을 마음 속에 가지고 작품을 보게 되면 머리가 복잡해지지 않을 수 없다. 외국 작품의 공연을 번안할 것인가, 그대로 공연할 것인가의 문제는 좀더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연기에 있어서 지적하고 싶은 부분은, 대체로 재미있었지만, 1막에서 의사 김씨가 아들 준기를 불러다 꾸중하는 장면은 원작과 차이가 있다. 원작에서는 아이가 마음이 상하지 않도록 우회적으로 타이른다면, 본 공연에서는 아버지가 그야말로 무섭게 꾸중하여 아들이 무릎을 꿇고 눈물이 나도록 만든다. 연출자는 이러한 모습이 좀더 한국적이라고 생각한 듯하다. 원작에도 나오는 용돈을 올려주는 장면을 통해서 결국 한국의 아버지의 전형인 근엄하고 그러나 속정이 깊은 모습을 보여주고자 한 것 같다. 다음으로 3막에서 사자들의 대화 중 시어머니가 며느리 영희를 대하는 말투가 필자가 느끼기에는 시어머니 특유의 짜증이 드러나는 듯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죽은 이후에는 다들 이생에서 관심이 멀어져가고 이생에서의 갈등, 고뇌와 격정 같은 것도 다들 잊게 된다고 하면서 정작 시어머니는 짜증스러운 것 같으니, 그래도 시어머니는 밉상이란 말인가? 배우가 그냥 건조하게 대사를 하고자 한 것이 필자에게 그렇게 들렸을 수도 있겠지만, 아무튼 시어머니가 이 부분에서는 좀 더 부드러워졌으면 한다. 시어머니의 대사도 무덤의 한 여인으로 백성희 씨가 보여준 정도의 말투가 적당한 것 같다.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언급하자면, 손톤 와일더는 1930년대 미국의 경제 불황기에 어떠한 사회성도 담지 않고 우리네 일상'만'을 옮겨 담아 내었다고 한다. 본 작품도 어떠한 사회적 정황도 담아내지 않고 1970년대 한국의 한 '평범한' 마을의 평화로운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그런데, 과연 이것은 평범한 마을/또는 가정의 평화로운 모습인가? 아니면 워낙에 평화로운 마을의 평범한 모습인가? 사회성을 반영하지 않고 사회를 보는 시각은 편향된 시각이라 주장할 수도 있을 것이다. 70년대의 우리의 삶이란 모두가 그리 평탄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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