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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생각

자동 연주 피아노의 '혁명'

스테레오 2022. 9. 21. 02:16

https://youtu.be/lhW_tRmpLFs

중국 출신의 세계적 피아니스트 랑랑이 무대에서 연주를 시작한다. 

연주곡은 리스트의 사랑의 꿈 제3번. 

연주회장은 언제나 그렇지만 조용한 곡이기에 청중은 더욱 숨죽여 랑랑의 연주를 듣는다. 

그런데 연주 도중 갑자기 청중들이 환호를 한다. 박수가 들리기도 한다. 

클래식 공연장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관객에게도 그리고 연주자에게도. 

아무리 좋은 연주라도 관객이 함성이나 박수로 연주자를 방해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이번 경우엔 연주자가 방해를 받지 않는다. 

피아노를 직접 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연단 위 피아노는 랑랑의 손이 건반을 누르지 않는데도 스스로 연주를 한다. 

스타인웨이 스피리오라는 이름의 이 피아노는 랑랑이 공연 전 어느 시점에 했던 연주를 피아노가 저장했다가 재생한다. 

랑랑은 연단 위에서 자신이 연주하지 않고 자신의 연주를 듣는다. 

그리고 우리 시대에는 이미 당연한 일인 것처럼, 이 연주는 그 기계에 아날로그 형태로 저장되는 것이 아니라 서버에 디지털 데이터 형태로 저장되고 그래서 모든 스피리오 피아노에서 연주 가능하다. 

자동 연주 기계는 꽤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었고, 녹음 기술이 발전하면서 한동안 주춤했지만, 디지털 정보와 무선 인터넷, 클라우드 기술 등이 융합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 것 같다.

그리고 어쩌면 여기서 소셜 미디어가 더해지면 지금까지 생각해보지 못했던 새로운 형태의 연주와 콘서트 문화가 생겨날 수 있을 것 같다. 예를 들어 조성민이 외국 어느 곳에서 피아노 독주회를 할 때 한국의 팬들은 서울의 한 음악당에 모여 실시간으로 음악회에 참여할 수 있다. 물론 연단에는 피아노가 홀로 연주하겠지만 동일한 연주를 거의 실시간으로 듣는 것이다. 인터넷 속도 지연을 걱정할 수 있지만, 이미 온라인 게임이 전세계에서 동시 접속으로 실시간 참여가 가능하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미 우려할 일이 아닐 수 있고 머지않아 전혀 문제되지 않게 될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반가운 일일 수도 있고, 재앙에 가까운 일일 수도 있다. 

현재 피아노가 이 '스마트' 피아노로 대체된다면, 피아노가 있는 어느 곳에서든지 세계 최고 피아니스트의 연주를 녹음-재생이라는 매개 없이 곧바로 들을 수 있다. (물론 악기의 성능에 따른 차이와 공간의 음향적 환경은 여전한 변수일 것이다.) 일반 교육 환경은 물론 피아노 교육에서도 활용도는 클 것이다. 일례로 평소에는 가까이 다가갈 수 없는 연주자의 연주를 눈 앞에서 봄으로써 그저 레코딩된 음원을 듣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학습이 가능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일류 연주자의 연주를 우리 일상에서 쉽게 마주할 수 있다는 것은 나머지 연주자의 영역, 이미 레코딩 산업으로 인해 줄어들만큼 줄어든 영역이 더 줄어들어 결국 사라지게 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교회에서, 결혼식장에서, 라이브 카페에서 연주자 없이도 훌륭한 연주가 가능하다면? 사람들은 처음에 앞서 랑랑이 손을 뗀 순간과 같은 반응으로 놀람을 표현하겠지만 곧 적응할 테고, 나중에는 굳이 비용을 들여 사람 연주자를 피아노 앞에 앉히는 일을 하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일류만 남고 나머지는 사라지는 일이 생길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연주자 없이도 연주를 들을 수 있다면 그 일류도 더이상 순회 공연을 할 필요가 없게 될 수도 있다. 또한 그 일류 연주자는 이미 고인이 된 과거의 연주자 혹은, 심지어 자신의 과거 전성기 연주 데이터와 경쟁해야 하는 처지에 놓일 수도 있다.

물론 이러한 상황은 레코딩으로 인해 오래 전부터 일어나고 있던 일이 이제 라이브 공연에서도 일어난다는 정도의 '작은' 변화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름의 답을 또 찾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가 예술 전 영역에서 일어나고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이제 AI가 소설을 쓰고 그림을 그린다. 영화에서 컴퓨터 그래픽과 실사를 구분하기 어려워진 지는 꽤 오래되었고, 이제는 사람 배우가 촬영을 전혀 하지 않고도 장면을 만들 수 있는 상황에 이르렀다. 사람의 일을 기계와 AI가 대체하고 나면 사람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라는 질문에 한때는 예술이 그 답으로 제시된 적이 있었다. 그 대답이 아주 순진한 것이었음을 현재 상황이 이미 보여준다. 혁명은 언제나 피를 요구한다. 자동 연주 피아노가 혁명이라면 이 혁명 또한 예외이긴 어렵다. 

 

*추가

관련 사례를 조금 더 찾아보니 야마하에서 이미 원격 수업에 활용할 수 있음을 시연을 통해 보여주고 있었다. 

https://youtu.be/iQgbP0JzPN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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