客記

이창동, 《밀양》 본문

영화

이창동, 《밀양》

스테레오 2011. 3. 12. 02:15

2007.06.12

배우 전도연 씨가 칸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는 소식을 아침에 확인하였다. 그녀의 연기력이나 특히 발음(diction)에 있어 문제를 지적하는 사람이 없지 않았으나, 이번 수상을 통해 국제적으로 연기력을 인정받은 것이니 축하할만한 일이다. 아무튼 그녀의 수상으로 인해 이창동 감독의 복귀작 <밀양>이 세간의 관심을 더욱 받게 되었다. 물론 일부 관객은 영화관을 빠져나오면서 '캐리비안의 해적'이나 볼걸 하는 후회를 표현하기도 했다. 전도연의 수상은 온 국민이 어깨를 으쓱할 법한 일이긴 하지만 그녀가 수상할 수 있었던 것은 그만큼 이 영화가 그녀에게 부여한 무게감이 크기 때문인 것 같다. 관객의 입장에선 시종일관 무겁고 칙칙하며 애매하게 끝나는 이 영화가 평일 밤에 즐길만한 오락거리는 분명 못되는 것이다. (물론 그 누가 이창동의 영화를 오락거리로 선택하겠는가만은...)

나는 이 영화를 '억울함'이라는 감정을 다루고 있다고 보았다. 남편이 죽고 아들과 단둘이 남편의 고향 밀양에 내려와 살아보려 했는데, 하나뿐인 아들을 유괴범의 손에 잃은 한 여자. 앞집 "은혜 약국"  ― 이 약국의 이전 이름이 "부부 약국인 것으로 미루어 보아, 이들 부부도 뒤늦게 '은혜'를 받은 경우로 추측된다  약사의 '권유'로 나가본 "상처받은 영혼을 위한 기도회"에 갔다가 거기서 목놓아 펑펑 울고나서야?'위로'를 얻고 그 전에는 알지 못했던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되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거듭난 그녀는 이윽고 자신에게 주어진 사랑이 자신의 원수에게도 베풀어져야 한다는 것을 알게되고, 교회의 가르침에 따라 원수를 사랑하고 용서하기 위해 교도소를 찾아간다. 그러나 자신의 '기대'와는 전혀 다르게 좋은 얼굴을 한 채 자신도 거기서 하나님을 믿게 되고 회개하고 용서를 받았다고 말하는 '그놈' 앞에서 그녀는 그만 할 말을 잃고 만다. 자기가 용서하기 전에 벌써 하나님께 용서받아버렸으니 자기가 할 수 있는 일도 없고, 하나님이 용서했으니 자신은 용서하지 않을 수도 없고...
 
이와 같은 아이러니 상황을 풀어가고자 감독은 오늘날 한국 개신교회의 일반적 모습을 자세히 그려내고 있다. 이창동 감독 자신이 기독교 신앙을 가지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그는 이전 작품들에서부터 줄곧 '기독교적' 상황을 등장시키고 있다. 집들이에 손님을 불러다 놓고 '기도'하자고 한다거나(<박하사탕>), 길거리에서 '전도'하는 장면을 담아내거나(<오아시스>) 하는 등의 장면을 통해 감독은 기독교, 특별히 개신교에 대한 관심을 보여 왔다. 이번 작품에서는 예배, 부흥회, 소그룹 모임, 기도회 등 한국 개신교회의 모습을 다양하고도 사실적으로 보여줌으로써 한국 사회에서 개신교회의 모습을 단면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감독 스스로가 이 영화를 통해 한국 교회를 비판하고자 하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 그러나 작품 곳곳에서 등장하는 이러한 대사와 행동들은 관객에게 웃음을 자아내고 있었다. 괴로워 하는 어린양에게 목사님이 그  머리에 손을 얹어 주는 장면이나, 약국 집사님의 그렇게 진지한 말들에 사람들이 피식 웃어버리니 말이다.
 
이 작품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신에 대한 의식'은 사실 작품의 시작에서부터 드러난다. 이 작품을 처음 보러 간날 앞부분을 놓쳐 버린 일이 있지 않았다면 필자는 아마 이 부분에 대해 덜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그날 영화관에 들어갔을 때에는 도로 위에서 지나가던 어떤 아저씨가 이신애의 차가 서버린 그 지점을 (카센터 김사장에게) 전화로 알려주고 있었던 장면이었다. 영화의 줄거리를 사전에 읽고 간지라 이신애가 남편이 죽은 이후 그의 고향이었던 밀양으로 간다는 내용을 알고 있었던 필자로선, 영화가 어디에서 시작되었던 것일까 궁금했었던 것이다. 뜻하지 않게 며칠 후 다시보게 되었을 때 확인한 첫번째 장면은 다름 아니라 차 창 너머로 보이는 하늘이었던 것이다. 하늘은 이후 아들 준의 시체가 발견된 강변에서 신애가 경찰차에 앉아 있는 순간 다시 비쳐지게 되고, 작품 후반부에서 도적질, 간음을 시도하며, 운동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교회 행사를 방해하는 등의 일련의 행동을 하는 순간 하늘을 째려보는 신애의 모습을 통해 다시 보여지게 된다. 자기 마음도 정리하기 전에 원수를 용서 해줘버린 신에 대한 배신감과 억울함으로 그녀는 독을 단단히 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녀의 반역은 번번히 좌절된다. 음반 가게에서 슬쩍하려던 시도는 알바 여학생에게 발각되고, 약국 장로님을 유혹해내는 데까진 성공했지만, 탁 트인 풀밭에서 하늘을 보며 시도한 간음은 '하나님이 보고 있는 거 같다며' 강장로가 물러남으로써 좌절된다. (심지어 극 초반에 다방 아가씨의 치맛속을 유심히 쳐다보던 김사장 마저 신애의 '생각 없냐'는 물음에 버럭 화내며 정신 좀 차리라고 면박을 준다.) 열심히 기도하고 있던 신도들은 '거짓말이야~ 거짓말이야~' 노래에 순간 놀라지만, 이에 넘어지지 않고 노래를 꺼버릴 때 까지 더욱 뜨겁게 기도함으로써 신애의 방해 공작을 극복한다. 무엇보다 자신의 손목을 칼로 그음으로써 스스로를 죽이고자 시도하지만, 이것 또한 거리로 달려 나가 사람들에게 자신의 목숨을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것으로 실패하고 만다. 십계명 둘째 돌판의 내용을 엎어보려는 그녀의 시도는 이처럼 허망하게 끝나고 그녀는 결국 정신병원에 입원하고 만다.
 
얼마 후 그녀가 퇴원하는 날, 김사장과 함께 돌아오다가 들른 미장원에서 신애는 유괴범 박도섭의 딸 정아에게 자신의 머리를 맡겨야 하는 어의없는 상황을 맞이하고 만다. 왜 하필 오늘 이 미장원에 자신을 데리고 왔냐고 괜히 김사장에게 성질을 내어 보지만, 사실은 현실로 돌아오자마자 겪게 되는 신에 대한 의식의 표현이며, 어쩌면 자신이 하려다가만 용서를 실천해야 한다는 윤리적 압박의 시작이다. 영화가 그녀의 집 한 구석에 비치는 햇볕을 비추면서 끝나는 것은 하늘을 비춤으로써 시작했던 오프닝에 대한 대구로 보인다. 이 대목에 이르면 영화 제목이기도 한 secret sunshine은 분명 다음의 성경 구절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도달한다: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취게 하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리우심이니라 (마태복음 5: 45)

어떤 사람은 신애가 교회와 하나님을 감당하지 못하고 튕겨져 나갔다가 말하고, 그녀는 사실상 밀양에 내려온 시점부터 미쳐 있었다고 말한다. 다만 신에 대한 신애의 의식은 퇴원한 후로도, 이 집에 햇빛이 비추이는 이상 계속될 것 같다. 비록 많은 관객들이 엄청 지루해 하며 도무지 공감하지 못한다는 반응이 들려오긴 하지만 오랜만에 복귀한 이창동 감독이 한국에서는 그만이 다룰 수 있는 주제로 찾아온 것은 확실한 것 같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