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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 슬럼프

저질 장비로 양질의 원격 수업을 할 수는 없다

스테레오 2020. 9. 15. 01:51

주5회 라이브 방송을 하는 '전업 방송인'의 삶을 살기 위해 결국 데스크톱을 장만했다. 게임도 채굴도 하지 않는 내가 팬이 두 개나 달린 그래픽카드를 사게 될 줄 몰랐다. Zoom은 스마트폰으로도 접속할 수 있지만 원격 수업을 진행하려면 얘기가 다르다. Zoom은 물론 파워포인트, 팀즈 또는 구글 클래스룸, 거기다 학교 마다 다른 학습관리시스템도 열어놓고 수업을 진행해야 한다. 여기에 강의 노트로 원노트까지 열게 되면 그야말로 화면도 메모리도 가득차 버린다. 지난 주 랩탑이 다중 화면 송출을 거부한 건 윈도우 중요 업데이트 과정에서 일어난 일로 밝혀졌지만, 이 업데이트도 메모리를 조금 더 확보하기 위해 했던 것이었다. 그날 간신히 수업을 진행했지만 학생들 피드백 중 목소리가 끊어진다는 지적이 많았다. 그 또한 메모리 부족으로 인해 시스템이 느려지면서 일어나는 일이었다. 지난 해 가을 이리저리 다니며 강의해야 해서 마련했던 작고 가벼운 노트북 컴퓨터에겐 처음부터 무리한 요구였다. 6개월 후에는 집에서 원격으로 수업해야 하는 걸 몰랐던 그때는 메모리 추가가 되지 않더라도 8기가면 충분하다고 생각했었다. 결과적으로 오판이었고, 두 배가 넘는 CPU와 메모리를 새로 갖추고 나니 비로소 시스템 불안을 걱정할 필요는 없게 되었다.*

원격 수업 두 번째 학기가 되자 대학은 이번에는 지난 번 보다 모든 면에서 나은 수업을 하라는 요구를 각종 공문을 통해 전달한다. 모 대학은 영상 강의 제작 시 ppt 슬라이드 쇼에 음성만 더하는 방법을 사용할 수 없고 반드시 교수자의 얼굴을 드러내라고 한다. 청각장애가 있는 학생들이 입모양을 볼 수 있도록 배려하라는 것으로 마땅한 요청이었다. 그런데 파워포인트 자체 기능으로 웹캠을 슬라이드쇼에 오버레이하고 영상을 만들면 인코딩 시간이 한 없이 길어지는 문제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었다. 대학이나 교육부가 학생들이 이 상황에서도 양질의 수업을 받을 수 있도록 살피는 건 바람직한 일이다. 하지만 학생들이 양질의 수업을 받으려면 강의 콘텐츠가 만들어지고 전송되는 환경이 먼저 갖춰져야 하는데, 이 부분에 대한 지원이 사실상 전무하다. 전임 선생님들은 학교나 학과 차원에서 방법을 마련하는 듯 하지만 비전임 선생님들은 각자 도생 혹은 시행착오를 계속하고 있는 형편이다. 이번 재난지원금은 꼭 필요한 계층에게 선별지원한다고 하는데, 지금 (시간) 강사에게는 최소 16기가바이트의 메모리와 빠르고 안정적인 인터넷 회선이 필요하다.

 

*비슷한 고민을 하는 분들을 위해 현재 사용하고 있는 컴퓨터 사양을 공유합니다. (조립비 포함 71만원, 2020년 9월 기준)

  • CPU: [AMD] 라이젠 5 마티스 3600 (헥사코어/3.6GHz/쿨러포함/대리점정품)
  • 메모리: [ESSENCORE] DDR4 16GB PC4-25600 KLEVV CL22
  • 마더보드: [MSI] A320M-A PRO (AMD A320/M-ATX)
  • 그래픽카드: [MSI] GeForce GTX1050 Ti OC D5 4GB 윈드스톰
  • 저장장치(SSD): [에센코어] ESSENCORE KLEVV NEO N400 480GB
  • 전원: [마이크로닉스] Classic II 500W +12V Single Rail 85+ (ATX/500W)
  • 케이스: [써멀테이크] Versa H17 (미니타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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