客記

국립극단 <테러리스트 햄릿, Hamlet> 2007 본문

공연

국립극단 <테러리스트 햄릿, Hamlet> 2007

스테레오 2008.03.17 10:16

작성일: 2007/11/06 02:42
수정일: 2008/03/17
2008년 재공연에 부쳐 작년 공연 리뷰를 일부 수정하여 다시 올립니다.
 

지난 10월 한 달 간 국립극장에는 희랍 비극과 중국의 경극을 비롯하여 인도, 터키, 그리고 영국의 글로브 극장에 이르기까지 세계 여러 나라를 대표한다는 극단들이 초청되어 한국의 관객들에게 다양한 무대 경험을 선사한 축제가 열렸다. 바로 이 국립극장 페스티벌이 끝나고 11월이 시작되는 시점에 또 다시 연극 애호가들에게 반가운 소식이 들려오고 있으니, 어디 한번 깊어가는 이 가을에 다시 한 번 남산을 찾아 올라보는 것은 어떨까?


2007년 11월 6일부터 약 3주간 국립극장 달오름 극장에서는 국립극단의 제209회 정기공연이자 2007년 세계명작무대로 선정된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가장 ‘유명한’ 비극 ≪햄릿≫이 상연된다. 특별히 이번 공연은 세계화 시대에 걸맞게 다국적, 혹은 다문화가 한 데 접목될 경우 어떠한 시너지 효과가 산출될 것인가에 대한 기대를 바탕으로 기획된 실험이라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16세기 영국의 극작가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한국의 배우들이 독일 현대 연극의 차세대 연출가로 주목받고 있는 옌스 다니엘 헤르초크(Jens Daniel Herzog, 現 만하임 국립극장 예술감독)의 연출로 한국의 관객을 맞이하게 되니 말이다. 헤르초크는 이미 2006년 5월에 ‘2006 셰익스피어 난장’에 자신이 연출한 독일 만하임 국립극장의 <오델로, 베니스의 무어인>으로 초청받아 남산 국립극장을 찾은 바 있는데, 당시 언론과 평단, 관객들에게 골고루 좋은 평가를 받은 바 있으니, 이번 공연에 거는 관객의 기대 또한 남다를 것이다. 여기에 신정옥 선생의 새 번역을 극본으로 채택했다고 하는데, ≪햄릿≫의 유명한 대사들이 기존 번역과는 달리 어떻게 ‘새롭게’ 제시되고 있는지 문학적인 차원에서도 관심가질 만한 일이 되겠다. 또한 국립극장에서 이미 햄릿을 연기한 경험이 있는 배우 서상원이 다시금 햄릿을 맡았으니, 그때 그 공연을 기억하고 있는 관객은 이번 공연을 통해 두 공연의 미쟝센의 차이를 비교해 보거나, 배우 서상원의 진화 혹은 변화에 초점을 맞추어 보는 것도 재미있는 관극이 될 수 있을 것이다.


***


필자는 기자들을 위한 시연회가 마련된 5일(월) 달오름 극장에서 2007년 <햄릿>을 먼저 접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는데, 이번 공연에서 인상적이고 흥미 있었던 부분들을 간추려 기록해 보고자 한다. 어떤 면에서 이 글은 이번 작품의 독일 드라마트루그인 요하네스 키얼스텐氏가 바란 열띤 토론에 필자 나름대로 참여하는 방식이리라.


셰익스피어의 희곡 ≪햄릿≫은 공연을 하기에는 꽤나 ‘방대한’ 분량의 작품이다. 1604~5년에 나온 사절판(Q2)이 일반적으로 가장 양질의 본문으로 인정받고 있는데, 이 Q2의 행수는 3700행을 약간 넘는다[각주:1]. 물론 괴테의 ≪파우스트≫처럼 행수로 보아 이보다 훨씬 더 긴 작품들도 충분히 있겠지만, 공연을 위한 극본으로서의 비극의 경우 두 세 시간 안에 이루어지는 정도의 길이가 적합하다고 여겨지고 있으며, 이와 같은 고전주의적 논의의 기준이 되는 소포클레스 작품의 경우 한 편당 보통 1500행 전후에서 마감된다는 점에서 보아도 ≪햄릿≫의 방대함이 드러난다. 보통 ≪햄릿≫의 대사를 삭제하지 않고 전체를 공연할 경우 최소 다섯 시간이 소요된다고 하는데, 한국에서 두 번 공연되었던 리투아니아의 네크로슈스 ≪햄릿≫의 경우 관객으로 하여금 실제로 그만큼의 시간을 할애할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이번 <테러리스트 햄릿>은 그 정도는 아니라 하더라도, 보통의 작품들보다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20분가량의 인터미션을 포함해 약 세 시간가량의 공연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특이한 것은 전반부에 해당하는 1부에 희곡으로 하면 1막에서 3막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되어, 1시간 45~50분 정도가 소요되는데, 이 부분 만으로도 보통의 연극 작품 한편 정도에 해당하는 ‘롱런’이라 할 수 있겠다. 연출가는 이와 같은 배치를 통해 장시간의 연기를 쉼 없이 지속할 수 있는 배우의 열정뿐만 아니라 관객의 집중력과 참여를 함께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무대는 관객의 참여를 중요시 한다는 공연 전 안내, 또는 당부의 말에 조응하듯이 달오름 극장의 그림틀 무대(proscenium-arch stage)를 파괴시켜 놓았다. 무대에서 객석의 상당부분을 덮어버린 마루는 흡사 패션쇼의 런웨이를 연상하게 할 만큼 충분한 깊이를 확보하고 있었으며[각주:2], 이 런웨이를 좌우로 삼열로 객석을 배치하여 배우와 보다 가까이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이 자리를 주최 측에서는 ‘셰익스피어 석’이라 명명하여 관객들이 능동적으로 극에 참여하도록 허락하고, 또 그러한 만큼 가장 비싼 값이 정해졌다고 하는데, ‘소극적’이고 무뚝뚝한 한국의 관객들이 과연 얼마만큼 호응해줄지 기대와 우려가 공존하는 대목이다. 아무튼 프로시니엄의 근본적 무대-객석의 분리 구조를 무시하고 거기에 자기 작품만을 위한 마루를 깔아버린 이 독일인 연출가(또는 무대 디자이너)의 시도는 관객이 호응하고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무대 구조를 통해 제공한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해체라 할 수 있겠다. 한편 이러한 시도를 통해 만들어진 극장의 모습이 셰익스피어가 활동하던 시기의 글로브 극장의 구조와 유사한 삼면 객석의 돌출형 무대가 되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정격성(authenticity)의 추구가 일부 클래식 음악계에서만 시도되는 것은 아님을 확인할 수 있다.


아버지의 갑작스런 죽음과 더 갑작스런 어머니의 재혼으로 혼란에 빠진 햄릿은 어느 날 유령으로 나타난 아버지에게서 아버지의 죽음에 관한 놀라운 비밀[각주:3]과 빨간색 ESPRIT 쇼핑백을 하나 받게 된다. 상복을 갈아입을 옷 한 벌 들어있을 법한 이 종이 가방에서 햄릿 왕자는 자동식 권총[각주:4] 한 정을 끄집어낸다. 혼란에 빠져 있던 햄릿에게 아버지의 복수의 복수는 그에게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어 준다. 이른바 미친 오레스테스 놀이라 할까?


사실 ≪햄릿≫의 플롯에서는 두 가지 중요한 모티프가 변주되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햄릿≫의 복수극 전통을 Ur-Hamlet이나 세네카의 작품에서 찾을 수도 있겠지만, 시대를 좀 더 거슬러 올라가보면, ≪햄릿≫의 중심적인 이야기는 고대 희랍에서부터 자주 사용된 엘렉트라-오레스테스 남매의 이야기에 이미 그 핵심적 내용이 들어있다고 하겠다. 이 이야기는 고대 희랍의 위대한 세 작가가 각자 자신의 개성이 드러나도록 재구성한 작품이 남아 있으니 비극작가들이 사랑한 주제라 아니할 수 없는데, 비록 셰익스피어가 이들의 작품을 직접 읽어보지는 못했다 하더라도, 르네상스의 영향으로 고대 희랍과 로마의 신화를 접한 셰익스피어가 이 이야기를 훗날 자신의 대표적 작품의 핵심 모티프로 사용할 수 있었던 것은 어쩌면 천부적 작가의 본능이 아니었을까.


그러나 소포클레스가 ≪엘렉트라≫를 씀에 있어 아이스퀼로스나 에우리피데스의 방식을 따르지 않았듯이, 셰익스피어 역시 아버지에 대한 복수를 주제로 가져오되, 인물의 성격을 새롭게 창조하고, 주변 인물을 풍성히 함으로써 선배 작가와는 다른 길을 제시하고 있다. 그는 클뤼타이메스트라와 아이기스토스, 엘렉트라와 오레스테스를 해체한 후, 거트루드, 클로디어스, 그리고 햄릿이라는 캐릭터를 창조하고, 이어 오필리어와 레어티즈 남매를 추가하여 새로운 이야기로 발전시켰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실제 햄릿의 이야기는 덴마크 역사서에 기록된 Amleth 이야기와 매우 유사하기 때문에 실제로 셰익스피어가 고전비극을 해체했다고 보기엔 어렵다.) 에우리피데스의 오레스테스가 자신을 낳아준 어머니를 죽이는 문제에서 큰 번민이 있었다면, 셰익스피어는 아버지 혼령을 통해 햄릿에게 그러한 갈등에서 피할 길을 마련해 준다. 다만 아버지의 명백한 원수를 처단하는 데 있어 고대의 영웅에게서는 전혀 볼 수 없었던 주저함이 햄릿에게 부여되지만, 그러한 무기력함의 반대편에 포틴브라스와 레어티즈를 배치하여 성격의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이번 공연에서 포틴브라스는 무대 안에 나타나지는 않지만, 그의 군대를 발자국 소리로 형상화 하여, 비록 보이지 않지만 존재감을 분명히 드러내 보인다.)


한편 ≪햄릿≫을 유명하게 만든 3막의 극중극 역시 실제 극중극뿐만 아니라 이 작품에서 두루 반복되는 모티프라 할 수 있겠다. 이 작품에서 극중극의 목적은 주로 거짓을 통한 진실의 확인에 있다고 하겠는데, 서로 적대적인 햄릿과 클로디어스는 상대에 대한 진실을 파악하기 위해 서로가 서로를 향한 ‘보이지 않는 연극(invisible theatre)’을 계획하고 실행에 옮기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주인공 햄릿은 자신의 연극은 성공시키며, 상대의 연극에는 넘어가지 않고 오히려 가려진 장막 뒤에 숨어있는 존재를 의식하고 역이용하기에 이른다. 오태석 선생이 연출을 맡은 극중극 <쥐덫>이 시작하기에 앞서 햄릿은 호레이쇼에게 숙부의 안색을 잘 살펴봐달라고 부탁하는데, 여기에 호레이쇼는 디카로 응답함으로 인해 ‘디지털 강국’ 한국 관객의 환호를 얻어내었다.


디카 뿐만 아니라 ≪햄릿≫ 극본의 기발한 무대화는 이번 공연에서 가장 주목할만한 대목이라 할 수 있다. 곧 이어 등장하는 저 유명한 ‘피리 불기’는 원작에서처럼 배우들이 가지고 온 피리를 이용하는 것 대신, 두 친구들에게 햄릿 자신의 ‘신체’를 붙잡게 하고 다음의 대사가 이루어 진다:


햄릿: 이 피리를 불어보게.

길던스턴: 전 불지 못합니다.

햄릿: 부탁이네.

길던스턴: 정말로 전 불 줄 모릅니다.

햄릿: 간청하네.

길던스턴: 저는 그것을 다루는 법을 모르고 있습니다. 왕자님[각주:5].


이러한 기발한 은유가 이전에도 시도 되었는지, 아니면 연출가의 독특한 발상인지 확신할 수는 없으나, 적어도 필자의 관극 경험에서는 기발하고도 재치있는 처리가 아닐 수 없었다.


또한 복수의 무기가 검에서 총으로 바뀜으로 인해 얻게 된 거리(distance)의 자유는 클로디어스의 참회 장면 역시 새로운 각도에서 볼 수 있게 만들었다. 무대 위에 설치된 샹들리에 위에 올라탄 햄릿 아래로 클로디어스가 등장하게 되고, 그가 쉽사리 굽혀지지 않는 무릎을 꿇어 회개의 기도를 올리는 순간 햄릿은 두 다리를 샹들리에에 걸고 거꾸로 매달려 숙부의 머리에 총을 겨눈다. 물론 이 장면의 성패는 무기의 변화와 관계는 없으나, 마치 뤽 베송 감독의 영화 <레옹>에서 주인공이 방문 위에서 거꾸로 매달려 상대 경찰들을 제압하던 장면과 같은 긴장감을 부여할 수 있었던 인상적인 장면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한편 엿듣기를 좋아하는 재상 폴로니어스는 ‘똑 같은’ 곳에 두 번 숨어 있다가 결국 햄릿의 총에 죽음을 맞는다. 아버지의 어의 없는 죽음은 오필리어의 정신을 망가뜨려 버리게 되는데, 햄릿과 엘렉트라가 검은색 상복을 선택한 반면 그녀는 교복을 벗고 세일러문이 되어버린다[각주:6]. 미친 오필리어의 등장은 여러 가지 감각을 자극 한다: 자기와 대면하고 싶어하지 않는 거트루드를 기다리며 그녀의 방문을 사정없이 두드리는 노크소리; 한 마을에 살았던 갑돌이와 갑순이의 사랑 노래; 세라복은 물론이고, 아버지의 임종을 함께 했던 피묻은 탁자보에 흩뿌리는 붉은 색 케첩, 그리고 그 케첩으로 인해 진동하는 냄새(이 냄새는 셰익스피어석에 앉았던 관객에게만 유효했을 것 같다). 이윽고 아버지의 부고를 접하고 한길에 달려와 클로디어스에게 M-16 소총을 겨누는[각주:7] 테러리스트 레어티즈는 다시 한 번 오레스테스를 연상케 하지만, 이윽고 다시 등장한 오누이의 “떴다 떴다 비행기~” 노래에 망연자실하고 곧 이어 그녀의 죽음에 오열하게 되고, 클로디어스의 계략에 따라 그녀의 장래식에 돌연 등장한 가족의 원수 햄릿과 재회하며 생사의 결투를 벌이게 된다.


결투의 장면은 처음에는 다소 우스꽝스럽게 시작하지만 이내 진지하게 진행된다. 오즈릭으로 흡수·합병된 신사는 캐디가 되어 등장하는데, 그가 짊어진 가방에는 골프채 대신 결투용 검이 준비되어 있다. 골프 놀이는 결투에서도 연장되었는데, 햄릿이 펜싱 검으로 티샷 흉내를 내면서 레어티즈에게 몰래 접근하여 점수를 얻는 것으로 결투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이후 결투는 과열되고, 육탄전이 벌어지며, 거트루드는 독배를 마시고, 햄릿은 독이 발려진 칼에 찔리고, 레어티즈 역시 자신의 꾀에 자신이 넘어가 죽음에 이르며, 햄릿은 어머니의 죽음을 목도하고 또한 레어티즈의 고백을 듣고 나서야 비로소 클로디어스에게 달려가 그를 칼로 찌르고 독이 든 포도주를 마시게 하여 자신의 테러 임무를 완수한다. 그제서야 무대에 나타난 부왕의 유령에게 햄릿은 다시 빼앗은 왕관을 돌려주고 침묵 속으로 사라지지만, 유령은 잠시금 왕관을 손에 들었다가 다시 놓치고 말 뿐이다. 연출가는 햄릿이 모든 사명을 마치고 전사함으로써 비극의 용이 되어 승천할 수 있는 상황에서 아버지 유령이 왕관을 놓치는 순간 여의주를 놓쳐 이무기로 전락하게 만들어 버림으로써, 햄릿의 고단한 생애를 짧게 비웃으며, 마치 자살폭탄 테러 소식을 접할 때 받게 되는 허망하고도 씁쓸한 느낌을 자아내게 한다. 유령도, 그가 전해준 총 한 자루도, 알카에다, 무자헤딘도 다 허깨비라는 것일까?


≪햄릿≫의 백미 중의 하나인 독백에 대해 잠시 생각해보고 글을 마치고자 한다. 독백이란 관객을 의식하면서 동시에 의식하지 않는 역설적 요소이다. 무대 상의 배우가 아닌 관객이 들으라고 말하지만, 동시에 관객에게 직접 말을 거는 방식이 아닌 혼자만의 생각인양 말하기 때문이다. 배우가 관객에 대해 의식하고 접근하는 방식은 아리스토파네스로부터 사용된 희극적 양식이다. 이러한 수법은 주로 관객의 웃음을 동반하게 된다. 비극에서는 웃음으로 인해 진지한 파토스가 깨어지지 않기 위해 관객에게 직접 말을 걸거나 관객이 지금 자신을 보고 있다는 것을 적어도 드라마 텍스트 상에서는 나타내는 경우가 드물다. 그런데 이번 공연에서는 시작부터 관객에 대한 서비스로 출발했다: 관객은 일시에 엘시노 궁으로 초대되고 결혼식의 하객으로 자리에 앉아 음료와 술(소주)을 대접받게 된다. 극 중간 중간에 계속적으로 관객―특히나 셰익스피어 석 앞자리에 앉은 관객―은 배우와 눈도 마주치고 스킨쉽이 이루어지기도 한다. 만약 이 공연에서 관객은 끊임없이 존재감이 드러남으로써, 비극에 참여하게 되는 새로운 지평이 열린 것이라면, 독백이란 역설적 행위를 관객과의 보다 직접적인 대화로 수정해서 읽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같이 잘 놀다가 어느 순간 관객을 모른 척 하고서 독백을 하는 것과, 사느냐 죽느냐 중에 무엇을 택할지 관객에게 직접 물어보는 것 중 어느 것이 덜 어색할는지에 관한 물음에 침묵하지 않는다면, 필자는 후자로 한번 가보고 싶다.

  1. 이경식 편주, Hamlet, 증보개정판, 1988(1993), 판문사, pp. 1~4. [본문으로]
  2. 관객들은 이 마루가 5막 ‘무덤’ 장면에 이르러 놀라운 방식으로 일어나는 것을 목격할 것이다. [본문으로]
  3. 원작 희곡에서는 아버지 유령이 자신을 문 독사가 지금 자신의 왕관을 쓰고 있는 숙부라는 것을 밝힐 때, 햄릿이 “의심쩍더니만! 제 숙부라고요!”라고 말함으로써, 햄릿이 이전부터 선왕의 죽음에 대한 의혹을 가지고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지만, 이번 공연에서 이 대목은 생략되어, 아버지의 이야기가 주는 충격이 더욱 가중되고 있다. [본문으로]
  4. 분명히 여기서 나온 총은 탄창을 넣는 자동식 권총이었으나, 이 후 햄릿이 사용하는 권총은 회전식, 즉 리볼버이다. 그렇다면, 아버지가 건내 준 총은 그저 햄릿이 스스로 만들어낸 허깨비에 불과한 것이란 말일까? [본문으로]
  5. 이경식 해설·번역, <햄릿>, ≪셰익스피어 4대 비극≫, 서울대학교출판부, 1996(1998). pp. 232~233. [본문으로]
  6. 교복이나 세라복은 헤르초크가 로리타 컴플렉스를 자극하고자 하는  면이 보이는데, 이 지점에서 역시 이 독일인에게 한국과 일본을 구별하는 건 어려운 일이었나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본문으로]
  7. 공연에서는 이 대목에서 거트루드는 매우 적극적으로 레어티즈 앞에서 막아서고 있는데, 그녀의 거의 유일한 적극적 액션이 클로디어스의 카리스마적인 셔츠 단추 뜯어 헤치기에 의해 묻히고 만다. 거트루드 배역의 부차적 성격은 그녀가 가진 애매모호한 입장에 의해 작품에 내재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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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중구 장충동 | 국립극장 달오름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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