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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국립 모스크바 말리극장 <세 자매> 2008년 9월 25일, 국립극장 해오름 극장 본문

공연

러시아 국립 모스크바 말리극장 <세 자매> 2008년 9월 25일, 국립극장 해오름 극장

스테레오 2008. 9. 30. 14:28

 <세 자매>의 드라마투르기에 대해서는 로버트 브루스타인이 먼저 언급한 바 있으므로 이를 기억해보는 것이 좋겠다(Chekhov's Dramaturgy in The Three Sisters, Anton Chekhov's Plays, tr. and ed. Eugene K. Bristow, New York & London: Norton, 1977, 368-81). 이 글에 대해서는 나중에 이야기 해보도록 하고, 지금 나로서는 (드라마의 결말이란)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일텐데, 체홉은 사는 게 죽는 것보다 더 어렵다는 사실을 그의 장막극을 통해 보여준다고 간단히 말하고 싶다. 작품 및 공연과 관련한 나의 몇 가지 의문을나름대로 풀어본다. 

체홉 작품을 보는 것은 왜 인내력을 요구하는 것일까?

  1. 극사실주의: 사건이 하나로 잘 집중되지 않고, 이쪽 저쪽 산발적으로 대화가 이루어진다.
  2. 관객들의 convention 혹은 습관 (무대 상의 기호들에서 어떤 '사건'이 발생하는지를 뽑아서(select) 의미를 파악하는) 이 체홉 스타일에 익숙해지지 않으면 좀처럼 집중이 어렵다.

3/4막이 좀더 집중력이 높은 이유

  1. 3막의 경우 마을의 화재라는 하나의 사건이 구심점의 역할을 하면서 집중을 용이하게 한다.
  2. 4막의 경우 솔료늬이와 뚜젠바흐 사이에 벌어지는 일의 정체가 지연되는 suspension 효과를 사용함으로써 관객의 호기심이 발동하게 된다. 서스펜션은 아리스토텔레스때부터 인기있던 극적 장치가 아니던가?

     

해오름 극장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

체홉극을 그 큰 해오름 극장의 무대에 올리는 것은 만만한 작업이 아닐 것이다. 특히나 해오름 극장은 폭이 최대로 약 22 미터에 이르고 깊이 또한 23 미터, 높이가 11.5 미터에 이르기 때문에 사실주의적 연극을 하기에는 '너무' 크다고 할 수 있다. 이번 공연에서는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을 회전 무대에서 찾았다. 해오름 극장의 그 넓은 공간을 모두 사용하지 않고 지름 20미터 회전 무대 그 안에서만 연기함으로써 집중도를 높였다. 실제로 한번에 사용하게 되는 공간은 10X10X3.14X0.25 로 대략 80 평방미터 정도가 되었다. 그러나 동시에 무대 장치가 입체적으로 회전 무대 전체를 가득 채우고 있기 때문에 무대가 가득 차 있는 듯한 인상을 줄 수 있었다. 회전 무대는 마치 인생이라는 수레 바퀴가 돌아가듯 천천히 돌아가며 인물들은 그 속에서 (무대가 돌아가는지, 관객들이 자신들을 보고 있는지 의식하지 못한채) 자신의 위치에서 자기 일을 하거나, 이쪽 저쪽으로 옮겨 다닌다. 마치 도너 케밥을 만들기 위해서는 돌아가는 고기 덩어리를 칼로 얇게 썰어 내는 것처럼 회전 무대가 돌아가면서 삶의 한 단편(slice of life)이 관객들에게 제시된다. 체홉극을 위한 현명한 선택이었다고 보인다.

  •  생각해보면 몇년 전 체홉의 단편소설을 러시아의 카마 긴카스가 LG 아트센터에서 연출했던 <검은 수사>에서도 이와 유사한 무대 전략을 취한 것 같다. 그 때에는 프로시니움 뒷편의 본래 무대는 완전히 비운채 극장 객석 2층 앞에 허공에 떠 있는 가설 무대를 세웠다. 물론 중간 중간에 원 무대 쪽으로 뛰어 다니고, 그쪽에서 소리치는 등의 장면이 있었지만, 무대 자체만 놓고 볼 때에는, 대극장 안에 또 하나의 소극장을 별도로 만들었던 것이다.

마을 화재 장면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의외로 간단하게 배경 날개 막(나무 숲을 상기시키는 형상을 하고 있었다) 뒤 부분에 붉은 색 조명을 설치하여 나무가 불타는 듯한, 그리하여 마을이 불타는 듯한 느낌을 만들어 냈다. 보다 양식적이고 상징적인 방식을 기대했던 나로서는 시시한 면이 있었지만, 그것은 사실주의적 연출이 될 것을 모를 때라야 기대할 수 있는 방식이다.

기타

  1. acoustic에 관하여
    그 넓은 무대에서 들려오는 배우들의 목소리가 그토록 명확한 것은 국립극장 시설이 우수하다는 증거일까, 배우들의 발성이 그만큼 탁월한 것일까? 그러나 이점과 관련해 나는 오직 올가의 대사를 되네일 뿐이다.

"그걸 알 수만 있다면!"

그토록 또록또록 들리지만 그래서 더욱 답답한 러시아 말이여!

 
2. 2막 마지막 부분의 야경꾼 소리와, 4막 마지막 부분에서 갑작스런 날카로운 소리는 <벚꽃동산>의 마지막 줄끊어지는 소리를 연상케 한다. 이 둘의 관계를 에릭 벤틀리가 이미 지적한 적이 있는데, 이번 공연의 연출도 이 둘의 관계를 의식해서인지 이 부분을 첨가하였다.

이 글은 스프링노트에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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