客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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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 슬럼프

맥북 사망

스테레오 2019. 8. 10. 00:34

지난 번 글이 맥북의 고장에 대한 것이었는데, 이번엔 사망이다.

비극으로 끝난 이 이야기를 나는 지금 새 노트북으로 쓰고 있다. 

 

작년 겨울 공인 서비스 센터에서 로직 보드 수리를 받고 그럭저럭 잘 쓰고 있었다. 그러다 5월 정도부터 일없이 꺼지고 재부팅 되는 일이 반복적으로 일어났다. 뭔가 이상하다고 느껴 가로수 길에 있는 애플 매장에 들고 갔는데 보드 고장이 의심된다는 진단을 다시 받았다. 그동안 15년 정도 여러 대 노트북을 사용하면서 한 번도 겪어보지 않은 메인보드 고장을 하나의 맥북에서 6개월 간격으로 두 번이나 경험하게 된 것이다. 흔히들 얘기하는 뽑기운이 없었던 걸까. 

 

더 슬픈 일은 그 다음이었다. 수리 받은 제품의 AS 기간은 90일이기 때문에 이번 고장에 대해서는 애플이 책임지지 않았다. '친절하게도' 매장 직원은 초기화를 해주면서 다시 써보고 그래도 같은 증상이 벌어지면 로직보드를 유상으로 교체할 수밖에 없다고 알려줬다. 수리 가격은 대략 70만원 정도일 거라고 했다. 

 

초기화를 하고 한 달 정도를 버텼다. 그러곤 어느 아침 책상에 가보니 화면에 물음표 폴더 모양이 깜박이고 있었다. 몇번 부팅을 해보려고 했으나 그 후엔 아무런 반응도 일어나지 않았다. 

 

공식 서비스를 포기하고 사설 수리 업체를 알아봤다.  가격도 가격이지만 수리를 받고도 6개월을 못 버틴다면 보드를 교체한들 무슨 소용인가. 사설 업체는 부품을 (어디선가) 구해서 고장난 부분만 수리를 하는 방식이었다. 그래서 수리 비용도 절반 정도였다. 

 

두 군데를 알아봤다. 한 군데는 유튜브에서 수리 과정을 공개하는 업체였고, 로직보드 전문 수리업체였는데, 문제는 거리가 너무 멀었다. 그래서 집에서 조금 더 가까운 곳을 찾아갔다. 오래된 수리업체였고 공지된 수리 가격이 앞선 곳보다 조금 더 저렴하다는 것도 먼저 찾은 이유였다. 하지만 수리 기사는 간단히 상태를 점검하고는 앞선 곳과 동일한 가격을 불렀다. 

 

며칠 후 수리 기사가 연락을 해서 고장이 간단하지 않고 부품을 구하는 데 한 달가량 걸린다고 더 기다릴 수 있냐고 물었다. 35만원을 들여 수리를 할 것이냐, 포기하고 새로 사야하느냐를 잠시 고민하다가 수리를 받아보자고 결정했다. 아직은 새 컴퓨터를 살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그러고 한 달이 채 되지 않은 어느 날 메시지가 왔다. 기사가 수리를 포기했다고 점검비 2만원을 내고 찾아가라고 했다. 공인센터보다는 조금 더 저렴한 가격에 보드 교체를 할 수도 있다고 했지만 그래도 60만원 정도로 권하지 않았다. 

 

그렇게 맥북이 사망했다. 새학기가 시작되기 전에 컴퓨터를 마련해야 했기에 급하게 몇 가지를 알아보고 필요한 기능이 적당히 들어있고 할인과 혜택도 많은 국내 브랜드의 노트북을 장만했다. 적어도 2년 안에 고장 나지는 않으리라. 고장이 나도 보드를 통으로 교체하라고 하지는 않으리라. 

 

마지막으로 맥북 수리와 관련한 불편한 진실을 알려주는 영상 하나를 공유한다(https://youtu.be/LHZHFQ5UTgc). 내용의 핵심은 이렇다. 애플은 고장 수리가 아니라 부품의 교체를 AS 정책으로 가지고 있는데, 문제는 교체해주는 부품이 새 부품이 아니라 먼저 고장난 부품을 수리한 리퍼비쉬 부품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이 리퍼 부품으로 교체한 제품의 고장률이 잦다는 것. 내 맥북이 수리 받고 6개월만에 다시 고장나 버린 것도 리퍼 부품 때문이라고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그나마 애플 케어라도 있었으면 리퍼 보드라도 다시 교체 받을 수 있었을 테다. 다시 맥북을 샀더라면 이번에는 애플 케어를 구입했겠지만, 고장날 가능성이 있는 제품을 팔면서 무상 서비스를 받으려면 돈을 지불하라는 것이 나는 아직 납득이 잘 되지 않는다. 그렇게 나의 애플 시절은 끝났다. 애플의 시대도 서서히 저물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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