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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신저스

스테레오 2017. 1. 5. 00:57

공간적 배경은 현재 함께 상영하고 있는 <로그 원>과 유사하지만, 이야기의 진행 방식은 차라리 <엑스 마키나>에 가깝다고 해야 한다. 물론 하이퍼스페이스가 없다면 <로그 원>의 진(Jyn)도 데스스타의 설계도를 탈취하기에 앞서 길고 긴 동면에 들어가야 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따지고 보면 예고 영상이 속인 것은 없지만, 그로부터 자칫 광활한 스펙터클과 스페이스 어드벤처를 기대했다간 크게 실망할 수 있다. <스페이스 오디세이>와 <스타워즈>는 물론이고, <그래비티>, <스타트랙> 리부트 시리즈, 그리고 맷 데이먼의 일련의 SF 시리즈(<엘리시움>, <마션>)에서 이미 보았던 우주선 안팎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거나 그보다 못하다. 하지만 이 영화가 견주고 싶었던 텍스트는 훨씬 더 근원적이었던 것 같고 그렇게 보면 꽤나 대담하다. 광활한 우주선에서 제일 먼저 깨어난 첫사람 짐(Jim)이 그 수많은 승객들 중에서 유독 오로라를 선택할 때 떠올려야 하는 것은 분명 <창세기>이며,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은 구절임에 틀림없다.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 아담이 어떻게 이름을 짓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어 이르시니 아담이 각 생물을 일컫는 바가 곧 그 이름이라 아담이 모든 육축과 공중의 새와 들의 모든 짐승에게 이름을 주니라 아담이 돕는 배필이 없으므로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아담이 가로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칭하리라 하니라 (창세기 2: 18-23)


짐은 첫 사람 아담의 독처가 얼마나 외로웠을지를 보여주는 인물로서 흥미롭다. 하지만 짐이 오로라를 만나고 그 후 두 사람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아담과 하와의 이야기 보다 흥미롭진 않았다. 그 이유는 후자의 경우 두 사람으로부터 기존에 없던 주제(죄)가 등장하지만, 앞의 두 커플 사이에서는 준비된 이야기가 예측대로 진행되기 때문이다. 질서가 있어야 할 곳에 원인 모를 혼돈이 찾아옴으로써 드라마가 시작되지만, 짐은 이 카오스적 상황을 우연히 맞이한 불운한 남자이기 보다는 그것을 넉넉히 해결할 준비된 영웅이다. 아담과의 비교를 이어가자면 이 또한 신적 섭리를 말하기 위함이라 생각할 수 있겠으나, 정확히 필요한 도움을 주고 용도 폐기되는 승무원의 등장에 이르면 그것이 칼빈주의적 예정론 보다는 지적설계자, 또는 잘 만들어진 극(well made play)이라는 닫힌 틀에 기반함을 발견할 수 있다. 두 승객의 마지막 선택은 첫 사람들 보다 훨씬 더 훌륭하고 고귀하지만, 그것은 인간성의 도약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편안한 귀가를 돕는 헐리우드의 배려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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