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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들과 왕들, 그리고 형제: 리들리 스콧, 《엑소더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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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들과 왕들, 그리고 형제: 리들리 스콧, 《엑소더스》

스테레오 2014. 12. 5. 20:42


별점이나 꽃점 따위를 좋아하지 않는 나에게 작품의 장점과 단점을 돈으로 환산하는 게 맞을리 없지만, "한동원의 적정관람료"는 새 영화에 대해 가장 빨리 분석하는 글이라 눈여겨 보는 편이다. 리들리 스콧의 새 영화 《엑소더스: 신들과 왕들》에 대한 이번 글(http://www.ddanzi.com/ddanziNews/3377075)을 보면서 이 사람은 나랑 영화 보는 시각이나 관점이 많이 다르다는 걸 새삼 확인한다. 사람마다 보는 관점이 다르니 같은 영화를 좋게 볼 수도 안좋게 볼 수도 있지만, 몇몇 부분은 반론이 필요하다고 느껴 주로 그가 밝힌 "인하 요인"과 관련해 몇자 남긴다.


- 출애굽기의 복습: 연극도 마찬가지이지만 영화란 스토리와 스펙터클이 전부가 아니다. 특히나 익숙한 스토리와 예상할만한 스펙터클의 영화에서는 그 이외의 것들에 주목해야 하는데, 한동원은 이 문제에 주목하지 않고서 스펙터클은 볼 만 했지만, 뻔한 스토리를 왜 다시 보고 있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번 영화는 출애굽기와도, 기존의 극장판 버전 (십계나 이집트 왕자)과도 다른 관점을 투영하기 위해 애쓴 노력이 곳곳에서 드러난다.


- "우리 신이 짱": 한동원이 가장 크게 오해한 부분이 이 대목이다. 결과적으로 이스라엘의 신이 승리한다는 점에서 그렇게 볼 수도 있겠다. 하지만 바탕이 된 이야기의 결말을 다시 쓰지 않는 이상 이 부분에서 새로움을 기대하는 것이야 말로 번지수를 잘못 찾은 게 아닐까. 만약 그런 거라면 제목이 "엑소더스" 즉 이집트를 나온다는 게 아니었겠지. 그리고 실제로 이번 영화에서는 신이 복수(複數)로, 그리고 여러 층위로 그려진다. 파라오 자신이 신이면서, 그 파라오가 믿는 신, 아내 십보라가 믿는 신, 모세 눈 앞에 나타난 신, 조상들에게서 부터 전해진 신, 그리고 광야에서 유대 민족이 직접 만드는 송아지 신까지 주목하고 있다. 나는 오히려 이렇게 다원화된 묘사, 모세의 회의적 태도 등이 기존의 기독교인들에게 불편하게 다가올 거라 생각된다.


- "람세스의 항변이 일리 있게 들림": 그렇다. 감독은 람세스에게도 상당한 공감을 가지고 있고, 심지어 모세(어떤 기사에서는 '모세스'라고 쓴다는데, 람세스와 라임을 맞추기 위함일지는 몰라도 그건 좀 아니다) 마저 신을 일방적으로 따르지 않는 모습으로 그렸다. 모세오경의 기록과 동일하지는 않지만 동시대 관객, 특히 인텔리 계급의 관객에게 설득력 있게 그리기 위해 기한 노력이 보인다. 아무튼 한동원 씨에게 하고픈 말은 이게 왜 인하요인이냔 말이다.


- 그저 참신하라고 신이 아이의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을까? 한동원이 느끼는 바로 그 유치함을 감독은 의도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모세는 신에게 이제 그만 (재앙을) 그만두라고 하고, 신은 그런 모세에게 '왜 이런 내가 비인간적으로inhuman 보이냐'면서 되묻는다. 감독은 현대인의 눈에는 심지어 유대-기독교인이라 할지라도 잔인함을 읽을 수 없는 장면에서 과거 십계에서처럼 일방적으로 이스라엘의 편을 들지 않는다. 필자에겐 너무 상식적인 문제라 이런 접근이 새롭다는 게 안보이는 걸까?


- "주어진 텍스트 및 예정된 기능성에서 한 발도 벗어나지 못한": 홍해를 건너고 나서 모세는 여호수아를 불러다 놓고선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 지금 살고 있는 사람들이 자신들을 침략자(invaders)라고 부를 거라 이야기 한다. 짧은 언급이지만, 유대 자본과 인력이 상당히 참여한 것으로 보이는 영화에서 이 정도 대사는 이스라엘에 대한 비판적 코멘트로 읽어 줘야 한다.


- 엔딩 크레딧이 토니 스콧을 언급하면서 시작된다는 것 또한 주목할 지점이다. 결국 이번 영화에서는 (아래 포스터에서 처럼) 서로 칼을 겨누고 있지만, 죽이지는 못하는 형제 둘을 그 어떤 버전에서보다 집중적으로 그리고 있다. 그리고 그건 이 노장 감독이 얼마 전에 먼저 떠나 보낸 아우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란 것도 예측할 수 있다. 좀더 프로이트적으로 해석하자면, 마지막 홍해 장면에서 모세와 람세스가 그 엄청난 파도를 맞고도 "어이없이" 살아 남도록 그린 것은, 그들의 생존이 역사적 사실이기도 하거니와, 이제는 다시 만날 수 없는 바다 저편에 있더라도 동생이 살아 있기를 바라는 형의 소망이라 할 수 있다. 토니 스콧은 2012년 8월 12일 LA 해안에 위치한 빈센트 토마스 다리에서 뛰어내렸다.


결론: 나는 적정관람료보다 무려 4천원이나 더 주고 (3D로) 봤지만 그 돈이 아깝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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