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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Sing or Sin

스테레오 2017. 5. 31. 02:02


한동안 오디션은 전세계적 유행이었다. 대중들은 한편으로는 거대 기획사를 통해 어려서부터 노래와 춤 그리고 기타 개인기를 훈련받은 가수들을 즐기면서 동시에 시스템이 만든 게 아닌 타고난 천재가 나타나주기를 고대한다. 오디션 출신들은 닳고 닳은 아이돌들과는 달리 순수하며, 불우한 환경 때문에 지금껏 천재적 재능을 발휘하지 못한 것으로 그려질 때 더 환영 받는다. TV는 애* 뮤직, 멜* 등 쉬지않고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서비스와 경쟁하기 위해 음악에 드라마를 끼워 판다. 물론 이 끼워팔기는 오래 전부터 뮤직 비디오라는 이름으로 이루어져 왔으나, 오디션에 담긴 드라마는 음악 자체가 아니라 음악을 전달하는 메신저를 향한다. 그들의 사연은 눈물 겨울수록 좋다. 비범한 재능을 지녔으나 절망적인 상황에 처한 주인공이 불굴의 의지를 가지고 도전하여 마침내 승리하게 되는 이야기에 시청자는 끌린다. 각각의 참가자가 그런 사연을 가지고 있으면 더할 나위 없다. 각각이 이겨야할 필요와 명분을 가지고 있는 승부는 끝까지 긴장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싱>에서는 참가자의 사연 뿐만 아니라 오디션 기획자의 사연 마저 극적이다. 버스터 문(Buster Moon)은 흥행 레퍼토리가 없어 파산 직전에 있는 극장주이지만, 극장(Moon Theatre)을 포기할 수 없다. 왜냐하면 이 극장은 선친이 아들의 꿈을 이뤄주기 위해 한평생을 바쳐 마련해준 유산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또한 저마다 이러저러한 어려움과 문제점을 가진 인물들이 함께 모여 마침내 대박을 터트리는 것은 너무나 익숙한 극의 흐름이지만, 익숙하기에 보는 동안 각각의 인물들의 성공을 바라는 감정 이입이 문득 문득 일어나는 것 또한 자연스럽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 말라. 그리고 노래하라. 이왕이면 라이브로. 그러면 좋은 날이 올 것이다." 


이 영화를 이렇게 요약할 수만 있었더라도 나는 기꺼이 옹호할 마음이 있었다. 하지만 이 작품은 치명적인 결함이 있으며, 그것이 변명할 수 없을만큼 의도적으로 배치되어 있기 때문에 평가를 내리는 것조차 민망하다. 요즘 영화, 그것도 어린 아이들이 보는 애니메이션에서 이렇게 노골적인 차별이 재현된다는 것은 경악할 만한 일이다. 찾아보니 영어권에서는 이미 이 영화의 인종주의를 성토하는 글이 적지 않다. 극중 조니는 갱단의 아버지를 두고 있는데, 이 배역이 검은 피부의 고릴라로 그려지고 있다는 점이 대표적이다. 돼지, 코끼리, 양 등으로 형상화된 다른 배역에 대해서도 인종주의적 혐의가 짙다는 비판이 이어진다. 미스 크롤리의 의안(glass eye)을 가지고 반복적으로 장난을 치는 것 역시 장애인 비하 혐의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다. 


이 영화의 모든 인종비하는 잘못이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심각한 것은 동양인 비하인 것 같다. 내가 아시아인이기 때문에 그렇게 느끼는 것일 수도 있다. 그나마 나머지 인물—혹은 동물—들은 인종 혹은 장애를 비하하는 외양에도 불구하고 그나마 제대로된 영어로 대화에 참여한다. 하지만 너구리 다섯 마리로 그려지는 일본인 가수지망생 그룹에게는 한 마디의 영어 대사도 주어지지 않았고, 그들의 일본어 노래나 대사는 잘 들리지 않으며, 자막도 없다. 극장주 문이 그들에게 사전을 찾아 겨우 하는 말이 왜 하필 “냄새난다”는 말이었을까? 명백한 조롱이거나 그것이 비하로 들릴 수 있다는 것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처사이다.  


이 영화에서 백인 우월주의를 갑자기 만나는 것보다 더 참담한 것은 우리 관객들의 반응이다. 이 영화의 문제점을 옳게 지적하는 관객은 극히 드물고, 역경을 이겨낸 성공 이야기에 감동했다는 반응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최악은 드디어 한국인이 아니라 일본인을 비하하는 애니가 나와서 반갑다는 반응이었다. 김치 비하하듯이 일본을 비하해줘서 대리만족을 느낀다는 이 사람은 반일감정에 취해 사태 파악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이 애니가 비하하는 아시아 걸그룹이 사실상 한국 그룹일 가능성이 다분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무식해서 한국어와 일본어를 구분하지 못하는 것이지 사실은 버스터 문이 말하는 냄새는 김치 냄새일지도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문의 목소리를 연기한 매튜 맥커너히는 아시아인이 영어를 못하고 이상한 냄새가 난다고 말하는 자신의 대사가 얼마나 부적절한지 살폈어야 했다. 마이너리티를 연기한 것으로 오스카를 받은 그가 아니던가. 하지만 정작 당사국의 전문가라는 자들이 “브라보”, “올해 가장 흥겨운 영화” 운운하고 있는 이상 2020년에 개봉한다는 2편에서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을 것이다.  


*덧붙임

일본어를 하는 사람에게 문의를 해보니, 일본판에서는 너구리(정확히는 래써팬더라고 한다) 자매가 중국어로 말하고 노래한다고 한다. (중국판에서는 한국 걸그룹일까?) 이쯤되면 이 작품의 문제는 우발적인 실수가 아니라 꼼꼼한 계획에 의한 것이라고 해야 겠다.  


http://movie.daum.net/moviedb/grade?movieId=99056&type=netizen&page=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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