客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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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프루프: a play of punctuality

스테레오 2009. 1. 13. 11:07

2008년 8월 22일

사실 대학로 두레홀 4관(구 아롱구지)에서 올려진 공연을 보기 전까지는 이 작품에 대해 별반 아는 바가 없었다. 2008년 2학기 서양연극이론의 역사 수업에서 다루게 될 텍스트 중의 하나였기 때문에 그 이상의 특별한 동기 없이 혼자서 공연장을 찾게 되었다. 다만 작가나 작품에 대해 사전지식이 없던 터라 공연을 보기 전에 인터넷에서 몇가지 정보를 검색해보았는데, 그 과정에서 이 작품이 꽤나 좋은 반응을 얻었다는 점과, 이미 헐리우드에서는 2005년에 영화로 제작되었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영화화된 연극의 경우 영화를 보는 것만큼 그 작품의 워밍업을 신속하게 할 수 있는 게 없기에 즉시로 영화를 구해서 보게 되었다. 영화를 먼저 보고 무대 공연을 보니 역시 플롯의 전개에서 몇가지 차이가 가장 두드러졌다. 영화는 장소의 이동에서 자유로운 '이점'으로 인해 좀더 토막난 시퀀스로 진행된다면, 무대 공연에서는 꽤나 긴 호흡으로 장면이 구성되었다.
그러다가 이 공연에서 한가지 특이한 점을 발견했는데, 암전마다 시계를 확인한 덕택에 이 공연이 매우 정확한 시간 배분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유연수가 연출한 이번 공연은 총 9개의 장면으로 구성되었다. 1막에 해당하는 1-4장은 각각 25분 - 10분 - 10분 - 10분, 2막에 해당하는 5-9장은 15분 - 10분 - 5분 - 10분 - 17분이 걸렸다. 8시 5분 경에 시작한 공연은 4장 말미에 캐서린이 "내가 썼다"는 대사를 끝으로 1막이 끝날 때 내 시계는 정확히 9시를 가리켰다. 9장은 유일하게 5의 배수에 들지 못하였으나 그 대신 암전되는 순간 10시 정각을 가리킬 수 있었다. 적어도 이번 공연은 시간의 배분 면에 있어서는 분명 '잘 짜여진' 작품이라 할 수 있겠다.

캐서린은 김지호와 서은경이 더블 캐스팅되었다고 한다. 내가 본 공연은 서은경이 출연했었고, (더블 캐스팅의 어쩔 수 없는 양자택일의 아쉬움을 접어둔다면) 만족스러운 연기를 보여주었다. 다만 언니 클레어와의 한줄대사 주고받기 부분에서는 못마땅한 부분도 없지 않았다. 자매건 남매건 형제건간에 사이좋은 경우가 드물다는 리얼리티를 제공한다는 점을 고려한다 하더라도 지나친 감정 과잉이 아닌가 생각되며, 서양 작품을 원작으로하는 공연의 전체 틀에서 다소 벗어난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클레어 역을 맡은 이경선의 연기는 적어도 나로서는 호감갖기 어려운 측면이 있었다. 기음(aspiration)이 과도하게 들어간 발성도 그러하거니와 여배우들에게서 자주 볼 수 있는 성우조 말투는 사실주의 대화극의 성격이 강한 이 작품과 조화되기 어려웠다.

해롤드의 나이를 30세로 설정한 것은 나름대로 한국적 각색이라 하겠다. 영화(그리고 원작)에서는 26세로 설정된 해롤드가 그 사이 나이가 들어 서른이 되었다면, 클레어는 어째서 27세 그대로 있는 것일까. 원작이 26세 남 - 27세 여의 설정으로 엘렉트라와 오레스테스로부터 이어지는 서양전통의 누나와 남동생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반면, 이번 공연에서 설정된 27세 여 - 30세 남의 관계는 그야말로 햇님 별님의 오라비와 오누이가 연상될 정도로 한국적 전통에 기반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관계가 물론 한국 사회에서는 보다 자연스럽게 보일 수 있지만, 캐서린이 나이에서 수적 열세에 처함으로써 캐서린의 배역 자체가 다소 약화되는 부작용이 생겨버렸다. 물론 오레스테스가 엘렉트라의 오빠가 되어버린 모극단의 공연도 있었으니 이 정도는 애교로 봐줄 수도 있겠다. 연상녀와 연하남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말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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