客記
한 은행에서 ‘나는 언제 부제가 되지?’라는 질문을 광고에 담은 걸 보았다. 20여년 전 ‘부자되세요’라는 새로운 덕담을 전국적으로 유행시켰던 그 광고가 생각났다. 차이가 있다면 이번 광고의 타겟은 2030이라는 점이다. 누구나 언제나 부자가 되고 싶어한다. 하지만 부자는 바람만으로 될 수 없는 것이기에 광고는 노골적으로 이 말을 노골적으로 꺼내는 경우는 드물다. 부자를 쉽게 약속했다간 상품의 신뢰마저 얻지 못하기 때문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부자를 직접 언급하는 광고가 되돌아왔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성공한 광고의 후광을 이용하려는 광고주와 대행사의 궁여지책이거나, 부자라는 말이 욕망의 수면 위로 올라와야할 만큼 시대가 궁핍한 것이거나, 혹은 그 둘이 합쳐진 것일 수 있다.
나는 한재림의 영화를 징검다리 건너듯 뜨문뜨문 본 셈이지만 그동안 본 영화로도 그가 우리 시대 혹은 한국 사회에 대한 통찰을 영화에 녹여내는 재능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가장 많은 사람들이 본 이라는 영화가 바로 그 통찰을 주제로 하고 있다. 정작 이 영화에서 주인공은 자신이 사람의 얼굴은 봤지만 시대의 모습을 보지 못했음을 한탄하지만, 한재림은 그 대사를 통해 세상 읽기의 중요함을 역설하고 있었다. 한재림의 세상 읽기는 에서 더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세부 내용을 떠나 검찰이 공권력의 실세로서 나라를 쥐고 흔든다는 걸 전면에 대담하게 제시한 이 영화는 8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 역사극의 외양을 갖추고 있지만 실제로는 개봉 이후 한국 사회를 내다보고 있는 듯한 생각마저 들게 한다. 2017년에 이미 검사와..
사실 원작 소설을 읽지 않았지만, 이야기가 새로울 건 없었다. 이 작품이 다루고 있는 장기 기증에 대한 이야기는 ‘슬의생’이나 ‘유퀴즈’에서도 다루었을 만큼 ‘흔한’ 이야기지 않은가. 하지만 흔하다는 말은 필멸의 인간이 이 주제에 대해 감히 붙일 수 있는 말은 아닌 것 같다. 더군다나 이 사건에 관여한 사람들 각자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동안 나는 아주 넓은 스펙트럼의 감정을 경험할 수 있었다. ‘보편적인’ 이야기가 가진 힘이 있었다. 공연을 보면서 내가 이 문제를 진지하게 생각해보지 않았음을 발견했다. 어떤 대사 때문이었다. 정확하지 않지만 기억에 남아 있는 대로 옮겨 본다. “환자 누구라도 자신에게 적합한 장기를 기증 받을 수 있다면, 그것이 환자의 권리라면, 논리적으로 볼 때 우리 모두에게는 장기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