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客記
1936년 여름의 조선이랬다. 성기웅이 각색한 체홉의 의 배경 말이다. 그런데 내 눈앞에 펼쳐진 무대에는 텔레비전, 컴퓨터 모니터가 아무렇지 않게 놓여 있다. 명백한 시대착오에 무심하기에 아무렇지 않고, 아무렇게 버려져 있기에 또 그러하다. 사실 이 전자 기계들은 무수한 신문지 더미와 부서진 가구, 주저 앉은 의자, 휠체어 등과 함께 무대에 나뒹굴고 있다. 이게 뭘까. 쓰나미가 지나간 것 같았다. 여기서 첫번째 질문이 생겼다: 후쿠시마 ‘재앙’ 이후 일본 연극은, 아니 타다상 자신은 어떻게 변했는가? 공연을 보면서 다른 질문이 생겼기에 연출과의 대화 시간에 이걸 질문하진 않았다. 작품과 동떨어진 얘기 같았고, 좀더 사적인 자리에서 물어봐야 할 질문 같았기 때문에. 그리고 나 자신이 그런 모임에서 한 번에..
극사발이란 집단이 있다. 풀어보면 꽤 도발적인 이름이다: ‘연극을 통한 사회적 발언’. 이들은 유난히 더웠던 지난 여름 작품 하나를 연습했고, 얼마 전 창단 두 번째 공연을 마쳤다. 그런데 이들이 서울프린지페스티벌에 출품한 이 작품은 비주류 예술을 위한 축제와는 다소 어울리지 않는다. 연일 신문지상과 트위터를 통해 뜨겁게 다뤄진 핫이슈인 국정원 불법 선거개입 사건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작품 속에서 ‘남조선일보’라는 가상의 유력 일간지 기자가 등장한다 하지만, 연극 잡지보다 먼저 시사주간지에 공연에 대한 기사가 대서특필 되는 것만 보더라도 이 작품이 얼마나 프린지의 축제 정신에서 벗어나 주류 문화를 지향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http://h21.hani.co.kr/arti/society/s..
고통 보(이)기 - 프로메테우스 vs 토마스http://pa-view.blogspot.kr/2013/08/vs.html
http://pa-view.blogspot.kr/2013/07/blog-post.html
"이런 건 정말 처음 봐! I've never seen ever like this!" 어제 공연이 끝나고 나오는 길에 누군가 이렇게 말하는 게 내 귀에 들어왔다. 그말이 재미있었다. 어제 밤 내가 본 것은 한편의 TV 드라마였고, 그건 내게도, 그리고 그 사람에게도 분명 익숙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말은 적절한 반응이기도 했다. 나는 무대 위에 설치된 스크린을 통해 한편의 TV 드라마를 보았지만, 동시에 내 눈에는 실시간으로 영상과 음향을 만들어내는 촬영 및 믹싱 현장도 감지되기 때문이다: 검은 옷을 입은 네 사람의 스탭이 4-5대의 HD 캠코더를 부산히 옮겨 다니며 무대 곳곳을 촬영하고, 인물들은 주방 안에서, 그리고 밖에서 지정된 자리에서 무대 구석에 설치된 모니터 화면을 보며 자기..
* 뒤늦게 드미트리 고트쉐프(1943-2013)의 부고를 접하고 그의 공연이 떠올라 예전에 쓴 글을 우리말로 옮겨 봅니다. 뮐러가 이 극을 쓸 당시 어떤 '기계'를 염두에 두고 있었는지 정확히 알 길은 없지만, 내 생각에 그는 일종의 분쇄기, 그것도 아주 미세하게 가루로 만들어버리는 기계를 구상했던 것 같다. 아주 섬세한 관객들만이 갈리기 전에 무엇이 있었는지를 알아차릴 수 있는데, 나는 불행히도 Die Hamletmaschine에서 Hamlet을 발견하는 데 성공하지 못했다. (이점은 스토파드의 경우와는 정반대이다. 그의 작품에서는 원본을 생각하지 않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아마도 내가 독일어를 알아듣지 못해서이기도 하겠지만, 막상 말을 알아들었다고 해서 큰 차이가 있었을 것 같지도 않다. (말을 알..
*극단 신작로의 재공연이 결정되었습니다: 2012년 2월 29일부터 3월 18일까지 홍대카톨릭청소년문화회관, 총 17회 공연 는 조지 오웰의 장편 소설로,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1년 전 영국의 한 중년 보험 영업사원 조지 볼링의 작은 모험을 그리고 있는 작품이다. 이 모험은 볼링에게 우연찮게 17파운드(현재 원화로 환산하면 17-80만원 정도)라는 적지 않은 공돈이 생기면서 시작된다. 볼링은 이 돈은 아내 몰래 오로지 자기 자신만을 위해 사용하려고 여러가지 궁리를 해보다가 마침내 그동안 잊고 살았던 옛 고향으로 돌아가 보고자 한다. 아내를 속이고 옛 추억을 찾아 고향으로 떠나는 이 이중의 모험이 물론 성공할 리는 만무하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자신의 유년시절을 돌아보는 것만으로도 극도의 전쟁 스트레스..
오래 전에 예매해 두었던 를 보았다. 아이슬랜드의 베스투르포트라는 극단의 작품인데, 이 팀은 몇년 전에 같은 곳에서 카프카의 을 원작으로 한 작품을 올려서 호응을 얻었던 바 있다. 제목에 들어 있는 아크로바틱은 괴테의 이 서재용 희곡을 극장으로 불러오기 위한 연출의 방편이었다. 주인공 요한은 젊은 시절 이름을 날린 배우였지만, 지금은 요양원에서 하루하루를 무료하게 보내고 있다. 찾아오는 사람들이 가끔 자신을 알아봐 주지만, 오히려 그것이 현재 자신의 모습을 더 초라하게 만든다. 그나마 자신을 돌봐주고 자기 이야기에 귀기울여 주는 젊은 여간호사(그레타, 또는 그레첸)에게 연정을 느끼지만 어떻게 해볼 수도 없는 처지가 슬프기만 하다. 젊은이들이 사랑을 찾아 요양원을 떠난 크리스마스 이브, 요한은 스스로 목숨..
지난번 "적도 아래의 맥베스"에서와 마찬가지로 재일교포들의 이야기 앞에서 나는 다소간 방어적인 자세를 취하게 된다. 아마도 나의 삐딱한 성품이 그 첫번째 이유이겠으나, 굳이 이유를 대자면 이야기의 소재가 공연을 보기도 전에 나에게 "연민"을 강요하고 있다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러한 선입견을 흔들어줄 뭔가 '쿨한' 이야기를 내심 기대하는데 막상 그러한 작품은 만나보기 어렵다. 그렇다고 작품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고 선뜻 말하지도 못한다. 분명 찜찜한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이 이야기가 과연 미학적 판단의 대상이 될 수 있는가' 라든지, '이처럼 심각하고 또 해결되지 않은 문제를 가볍게 다룰 수는 없는 것 아닌가'라는 질문을 스스로 던지기 때문이다. 그나마 지난 번에는 "단조롭고 지루하다"라든지,..
"Jessica Dickey is giving such an extraordinary performance. The play is also a remarkable piece of writing." — New York Times - To read the full review in the New York Times please click here "Dickey does a terrific acting job under helmer Sarah Cameron Sunde..." — Variety "The Amish Project is thought-provoking, compelling theatre..." — nytheatre.com "(Dickey's) craft made me weep. The virtu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