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客記
이번이 두 번째이다. 샤샤 발츠를 본 것이 두 번째가 아니라 공연일자를 잊고 놓쳐버린게 두 번째이다. 기차도 놓쳐보고 비싼 공연도 놓치고, 갖가지 놓쳐버리는 놓치는 인생인가. 사정을 해서 보조석하나 얻어 공연을 볼 수 있었다. 예약 시스템이란 것에 딴지를 걸 수 없고, 그 만큼의 기회비용이 발생하는 일이라 나의 실수를 정당화할 수는 없겠으나, 뭐랄까 공연티켓을 사는 것은 단지 어떤 특정한 시간과 장소를 내가 임대하는 것이라기보다는 그 공연자들과의 만남에 대한 약속이기에, 그 공연을 보고자하는 의지가 담겨 있기에 빈자리가 발생하면 나같이 멍청한 실수를 범하는 자들에게도 관용을 베풀 수 있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각설하고 무용에 대해 그리 밝지 못한 나는 이 공연을 어떻게 보았나. 한마디로 장..
지각으로 막이 올라간 후 입장하였는데, 심상치 않은 무대가 시작되었다. 무대 바닥이 하나의 모니터로서 요즘 음악재생프로그램에서 지원하는 시각화(visualization) 기능같은 영상이 펼쳐졌고, 무용수들이 그 위에서 군무를 이루었다. 무용수들의 움직임을 '따라' 바닥에 펼쳐진 그림들도 파동으로 응답했다. 아니 어쩌면 그 파동을 따라 무용수들이 움직인 것인지도 모른다. 마치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하는 논쟁과 비슷하기도 하다. 어제의 그 무대 장치(조명이라고 하기는 좀 애매모호한 점이 있는 것 같아 보다 넓은 의미에서 무대 장치라 하자)에 대해 의견이 분분했다. 대형 LCD설, 미리 프로그램된 영상을 투사했다는 설, 또는 바닥의 센서가 무용수들의 움직임에 반응하는 것이라는 DDR설까지. 다음 이 점도..
서울 공연예술제 해외초청작인 러시아 극단 리쩨이넘의 오이디푸스 왕을 관람하였다. 놀자티켓이라는 기획티켓으로 봤는데, 예술극장 2층 가운데 맨앞은 생각보다 자리가 좋지 못하다. 난간과 조명들로 인해 시야가 가리기 때문이다. 결국 자리를 옮기고... 이 작품은 몇 해전 역시 공연예술제(그때는 연극제) 출품작으로 김명화 각색의 을 생각나게 했다. 그 생각이 분명히 난것은 바로 (정확히) 코린트식 기둥을 사신이 매고 나왔을 때였다. "~그것은 인간"을 보면서 무대에 대해 말하며, 나는 기둥 양식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 바가 있었던 것이다. 아무튼 그 당시의 무대는 무너진 희랍식 신전이 회전하면서 다양한 무대를 펼치게 되었다면, 이번 무대는 꼭 씨름판-아마도 오케스트라라고 볼 수도 있겠다- 같은 원형무대를 한가지..
어쩌면 우리사회는 아직 우리의 70년대를 보여주거나 봐줄 준비--용기, 너그러움 등--가 되어 있지 않은 것 같다. 에서는 대한민국 근현대사의 아픈 기억을 조심스럽게 들추어 내지만, 적당한 갈등 이후에 급하게 화해를 향해 달려간다. 이 문제는 극중 갈등이 애시당초 피해자끼리의 문제였다는 점에서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 아버지와 딸을 플롯의 중심에 두고, 아버지의 아버지를 언급함으로써 작품은 아직 끝나지 않은 냉전 반세기를 아우르는 데에는 성공하였으나, 각각이 충분히 다루어졌다고 보기엔 어렵다. 극중극은 유기적으로 연결된 두 개의 세계를 병렬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형식이다. 그러나 둘중 하나만 충실히 보여주는 것보다 못할 경우가 허다하다는 점에서 섵불리 시도해서는 안되며, 특히 하나를 완성하지 못해 절반짜리..
독립영화 감독 방준호와 연극배우 구현정은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뉴욕으로 가서 결혼하고자 한다. 뉴욕에서 결혼 이벤트 사업을 하고 있는 방준호의 친구는 두 사람의 결혼을 축하하고자 연극을 한편 꾸민다. 그 작품이 바로 《한여름밤의 꿈》이다. 그들은 "한 겨울의 추위를 녹이고자" 《한여름밤의 꿈》을 무대에 올린다. 이 번 공연에 대한 소감을 햄릿의 대사로 대신한다: "... 그리고 어릿광대역을 하는 자들은 대본 외의 것은 말하지 못하게 하오. 그들 중에는 머리 둔한 관객들까지 웃기려고 먼저 웃어버리는 자들이 있소. 그 시간에 그들은 연극의 중요한 내용을 생각해보아야 하는데 말이오. 그건 아주 야비하오. 그런 수법을 쓰는 어릿광대의 마음속에는 가장 치사스러운 야심이 있음이 드러나오..." (《햄릿》 III...
12월 2일 두산아트센터 space111 말하고 노래하는 여우, 사람에 따라 매력적일 수도 거부감이 들 수도 있는 소재이다. 일본 문화에 친근함을 느끼는 관객이라면 흥미있을 법한 작품이다. 또한 늦은 저녁 성인들을 대상으로 하기 보다는 어린이들을 관객으로 하는 것이 보다 효과적일 것 같다.
연극이란 무엇일까? 연극계에 종사하거나 이것을 공부하는 사람들조차 이 물음에 한마디로 답하는 것은 어렵다. 그러나 이 물음에 정답이 존재할 수 있을까? 인류 역사가 시작된 이래로 각양각처에서 수많은 모습의 연극이 있어왔고 지금도 펼쳐지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한 마디로 정의하고자 하는 시도는 언제나 실패하고 만다. 단 하나의 정의는 불가능하더라도 시대와 지역마다 유력한 정의들은 있어 왔다. 물론 우리 시대에는 그와 같은 주류 연극론이 있다손 치더라도 모두가 그것을 따라야 할 법적 의무 따위는 존재하지 않으며, 오히려 거기에 저항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기도 한다. 그러나 오늘날의 극예술가들도 시대적 주류 연극론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다. 때로는 비평이라는 이름으로, 때로는 아카데미..
2009년 3월 13일 금요일 부산 수영사적공원내에 자리한 수영민속예술관 놀이마당에서 수영야류(들놀이) 탈놀이가 벌어졌다. 또한 탈놀이에 앞서서는 길놀이 행렬이 벌어졌다. 이번 길놀이는 1935년 일제의 강압에 의해 탈춤이 금지되면서 전승되지 못했던 길놀이를 복원하였다는 점에서 남다른 의의를 지닌다. 해방 이후 탈춤은 복원 계승되어 오고 있지만 길놀이는 그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식민지 시대 외세의 억압으로 금지되었던 공연이 75년이 가까이 지나 국가 기관(문화체육관광부)의 후원 하에 복원된 이번 행사이기에 이번 일은 분명 그 자체로 보면 민족의 아픔을 씻어내고 민족 문화를 다시 세우는 경사라 하겠다. 그러나 민족 문화를 보존하고자 하는 국가의 박물적(博物的) 관심 속에 기성 체제와 권력에 대한 저항적 ..
2008년 8월 22일 사실 대학로 두레홀 4관(구 아롱구지)에서 올려진 공연을 보기 전까지는 이 작품에 대해 별반 아는 바가 없었다. 2008년 2학기 서양연극이론의 역사 수업에서 다루게 될 텍스트 중의 하나였기 때문에 그 이상의 특별한 동기 없이 혼자서 공연장을 찾게 되었다. 다만 작가나 작품에 대해 사전지식이 없던 터라 공연을 보기 전에 인터넷에서 몇가지 정보를 검색해보았는데, 그 과정에서 이 작품이 꽤나 좋은 반응을 얻었다는 점과, 이미 헐리우드에서는 2005년에 영화로 제작되었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영화화된 연극의 경우 영화를 보는 것만큼 그 작품의 워밍업을 신속하게 할 수 있는 게 없기에 즉시로 영화를 구해서 보게 되었다. 영화를 먼저 보고 무대 공연을 보니 역시 플롯의 전개에서 몇가지 차이..
스즈키의 와 문화상호주의 셰크너(Richard Schechner)는 스즈키 타다시를 문화상호적(intercultural) 연극의 대표 주자로 거론한 바 있는데(2006: 306), 이번 작품의 경우 그 구성원만으로도 스즈키의 '문화상호주의'의 이념을 되새기게 해준다: 소포클레스의 원작(고대 아테나이)을 오페라용 리브레토로 각색한 호프만슈탈의 텍스트(오스트리아); 연출과 음악(타카다 미도리)을 비롯한 미술, 조명, 의상, 음향 등의 제반 스텝들(일본); 그리고 한국의 배우들. 여기에 변유정과 번갈아 가며 엘렉트라 역할을 맡은 러시아 배우 나나 타찌시빌리를 더하고, 아르코 대극장의 프로시니움 무대의 뿌리를 서양에서 찾는다면 거론될 나라는 더 늘어나게 된다. 그러나 만국박람회가 아닌 이상 열거되는 나라가 많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