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客記
이번 가을 비슷한 시기에 개봉한 전기 영화 두 편을 연달아 보게 되었다. 은 마치 달의 저편을 보듯 인류 최초라는 밝은 빛에 가려져 있던 닐 암스트롱의 심적 고통에 동참하게 한다. 프랜차이즈가 어느덧 40년이 되었고 정교한 그래픽 기술로 우주를 상상하는 것이 너무나도 간편한 일상이 되어버린 이 시점에서 감독은 지구 밖을 '실제로' 나가는 건 그렇게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는 것, 그래서 우주에서 전쟁을 하지 않더라도 인간이 지구를 벗어나는 것 자체만으로도 엄청나게 드라마틱한 일임을 집요하게 보여준다. 위대한 성취에 뒤따르는 희생이 과연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지 묻는 것은 를, 그 과정에서 영혼을 쥐어짜듯 몰아가는 것은 를 떠올리게 한다. 드라마의 힘은 두 작품을 합쳐 놓은 만큼 강력하다. 단, 광활한 우주를 ..
고연옥 작, 김정 연출, 남산예술센터 어미가 새끼를 죽이는 일은 동물 세계에서는 드물지 않고 희랍의 메데이아나 우리네 곰 신화에서도 이따금 발견되지만 현대인의 감각으론 무대에서라도 마주하고 싶지 않은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상상력의 주파수를 고대와 현대, 그리고 비극과 멜로드라마의 어느 중간 지점에 맞춰보자. 곰과 사람이 동거하고 아이를 낳아 기를 수 있다는 상상은 우리가 열망하는 순수한 사랑이 어쩌면 짐승만도 못한, 욜로라는 자기애의 다른 이름이 아닌지 묻게 한다. 무대 중앙 바닥이 두 가닥 철선으로 들어올려질 때 굴은 잠시나마 바닥과 벽이 구획된 집의 형상을 갖춘다. 하지만 이 벽을 지탱하는 철선은 부부의 유대감 만큼이나 가늘고 그래서 불안하다. 세상에 잘못 태어난 아이는 없다. 부모가 벽의..
우디 앨런의 2014년 작 가 셰익스피어 희극을 닮아 있다면, 이번 은 다분히 모던 드라마를 연상시킬 뿐만 아니라 실제로도 여러 군데서 언급/차용하고 있다. 몇몇 오역*이 거슬리지만 드라마 전공자들이 보면 할 말이 많을 영화이다. 감독 자신의 경험을 반영하는 인물 구도이지만 자기 변명하려고 만든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이걸 자기가 먼저 바싹 엎드려서 다른 사람이 더 말을 못하게 하는 고도로 계산된 자기 합리화라는 해석도 없지 않다. 하지만 믹키(팀버레이크)가 캐롤라이나(쥬노 템플)에게 건내주는 책이 하필 (프로이트의 제자로서 오이디푸스 컴플렉스를 집대성한) 어니스트 존스의 "햄릿과 오이디푸스"라는 건 감독 자신의 자기 희화화라고 밖에 볼 수 없지 않은가. 평소에도 자주 비교되지만 이번 영화는 특히나 홍..
2017년 客記를 다녀 가신 미지의 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사실 댓글이나 방명록에서 방문 흔적을 거의 찾아 볼 수 없기 때문에 누가 제 글을 읽고 계신지 저는 잘 모릅니다. 티스토리에서 마련해준 결산 리포트를 보니 지난 해 저도 모르는 사이 1만 여명이 이 블로그를 방문하셨다고 되어 있네요. 방문자 수치를 어느 정도 믿어야 할지 모르겠지만, 찾아오시는 분들을 위해서도 더 분발하겠습니다. 지난 해에는 영화를 주제로 가장 많은 글을 썼다고 합니다. 실제로는 연극에 대한 글을 더 많이 쓰겠지만, 경우에 따라 다른 매체에 쓴 글을 재수록 하고 있어서 발행하지 않은 글들이 많습니다. 영화는 그야말로 감상문 수준의 글을 편하게 쓰고 있는 것이지만 다른 분들도 보실 수 있도록 가급적 공개하고 있습니다. 20..
우메다 사토시 지음, 유나현 옮김, 비즈니스북스, 2017. 일본의 유명 광고 카피라이터인 저자가 말하기 기술에 대해서 말한다. 어떻게 하면 귀에 팍 꽂히는 말을 할 수 있는지 가르쳐 줄 것 같지만 저자는 지극히 당연한 말을 강조할 뿐이다. 말보다 생각이 우선이라고. 세련되고 번지르르한 말 기술이 아니라 내면의 말, 즉 생각의 폭과 깊이를 더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내면의 말을 겉으로 꺼내 표현하는 기술은 어디까지나 부차적이며, 이 순서가 지켜지지 않으면 아무리 훌륭한 표현도 감동을 만들지 못한다는 것이 저자의 기본 입장이다. 매우 원론적인 말 같지만 글쓰기나 말하기 스킬을 얻으려고 이 책을 선택한 사람은 뜨끔할 수 있는 지적임에 틀림없다. 각자 생각해야 할 몫이 다르고 또한 생각은 누구도 대신..
위기철 지음, 창비, 2013. 조안 에이킨의 '동화 쓰기'에 이어 동화 작법 관련 조사를 하던 중에 보게 된 책이다. '동화를 쓰려는 분들께'라는 부제가 붙어 있지만, 굳이 부제를 이 글의 제목에 덧붙이지 않은 건, 이 책의 내용의 대다수가 글쓰기 일반의 문제이지 동화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는 점 때문이다. 물론 동화의 특수성이 있겠으나, 독자를 누구로 설정하느냐 문제를 제외한다면 동화라고 해서 완전히 다른 글쓰기를 하는 건 아니다. 저자 스스로 말하듯이, 작가가 아이 마음을 갖고 쓰면 동화가 되고, 어른 마음을 갖고 쓰면 소설이 될 뿐이다. 그런 측면에서 이 책은 창조적 글쓰기를 해야 하는 사람들 뿐만 아니라, 문학이나 예술을 주제로 논문이나 평론을 써야 하는 사람들에게도 일독을 권할 만하다. 무엇보다..
조안 에이킨(Joan Aiken) 지음, 이영미 옮김, 백년글사랑, 2003. 저본이 무엇인지 밝히고 있지 않아 확정할 수는 없으나, 아마도 The Way to Write for Children: An Introduction to the Craft of Writing Children's Literature 의 1998년 개정판을 옮긴 것으로 보인다. 어린이책 관련 연구를 진행하고 있어서 동화 작법 관련 서적을 도서관에서 찾던 중 알게 된 책이다. 동화에 대해 어렴풋이 알고 있거나, 혼자서는 해결하지 못하던 것들을 저자 자신의 오랜 경험과 풍성한 예시를 통해 말해주기에 좋은 공부가 되는 책이다. 비단 동화 작가를 지망하지 않더라도 글쓰기를 하는 사람들은 흥미있을 내용이 적지 않다. 내가 더 살펴봐야 할 분..
주디스 허먼, 최현정 옮김, 플래닛, 2007. (이후 열린책들에서 개정판 출간)이 책은 내가 트라우마가 예술 창조의 동기가 되거나 소재가 되는 사례를 연구하기 위해 배경 지식이 필요해 고른 책이었다. 내가 조사한 범위 내에서는 트라우마에 관한 국내서 중 일반인이 접근할 수 있는 가장 포괄적인 책인 것 같다. 이 책의 구성을 생각한다면 원제(Trauma and Recovery: The Aftermath of Violence) 그대로를 번역하는 게 맞았으리라. 이 책은 한편으로 트라우마라는 개념이 처음 제안되고 논의되기 시작한 19세기 말부터 가장 최근에 이르는 진단 및 치료사를 다루며 동시에 트라우마의 핵심 개념과 치유 과정에 관계하는 주요 쟁점을 소개한다. 트라우마는 비록 정확한 의미를 모르고 쓸지언정..
생각은 자유롭게, 연극은 치열하게: 연출가 김재엽의 작품들 예술의전당과 함께 Beautiful Life 2017년 11월호 vol. 339, 8-11면.https://drive.google.com/file/d/1YtjlSc1N3wgndvdyrFIN1rCz39qoOvQ6/view 잡지 전문 보기 링크:https://www.sacticket.co.kr/SacHome/playzine/pzMonthly
원주소: http://www.drama-in.kr/2017/12/you-know.html 당신이 알지 못하나이다원작 권여선각색/연출 박해성 출연 신사랑, 황은후, 노기용, 우정원, 신지우2017.11.23-12.03남산예술센터 드라마센터 연극 는 동명 제목의 소설 속 인물들에게 적절한 신체와 음성을 부여했다. 이 과정에서 원작 소설의 서술 방식이 만들어내는 독특한 서스펜스는 아쉽게도 사라져야 했다. 권여선의 원작은 각 소절이 서로 다른 1인칭 화자에 의해 서술됨으로 인해 독자가 해당 소절을 읽을 때 이번에는 누가 서술자인지를 찾아야 하는 수수께끼가 주어진다. 이 수수께끼를 푸는 건 그리 어렵지 않지만 독자에게 일정한 긴장감과 능동적 참여를 허락한다. 이 두 가지는 두 형식이 가진 특성을 서로 맞바꾼 것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