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客記
스페이스111의 인인인 기획 공연 마지막을 장식한 《인어도시》를 보았다. 죽음을 목전에 둔 호스피스 병동에서 환자들과 간호사, 여기에 기이한 몇몇 인물이 더 등장하면서 이야기는 현실과 환상, 삶과 죽음 사이를 넘나든다. 병동이라는 장소는 응접실 연극 전통에서 볼 때 나름 참신한 공간적 배경이라 할 만하다. '말발'이 좋은 작품이었으며 특히 마지막에 인물들 각자가 자신의 삶을 정리하는 대사들은 리듬감이 있고 재미도 있었다. 각각이 나름대로 가슴아픈 사연을 가지고 있고, 그러한 과거로 말미암아 치명적인 병에 걸리게 된 그들의 상황에 동정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그 방에 모인 사람들이 전부 같은 운명 앞에 놓여 있는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모두가 같은 운명을 하고 있기 때문에 그들이 서로 다른 이야기를..
지난번 를 보지 못한 것도, 이번 공연이 그다지 좋지 못한 것도 아쉽다. 이 발표된 지 이제 100년이 지났지만, 아직 이 섬세한 텍스트는 무대 위에서 잘 살아나지 않는 것 같다. 공연이 졸리지는 않았지만, 딱히 재미있지도 않다. 3막에서 좀더 아기자기한 것을 기대했는데, 내가 받은 인상은 너무 왁자지껄하고 산만했다. 특히 라네프스카야의 감정은 필요 이상으로 과잉되어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가예프가 "당구" 이야기를 꺼내는 부분에서 너무 기계적으로 읊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배우가 또는 연출이 그 부분에서 어떤 해석을 하고 있는지 잘 보이지 않는다. 뜨로피모프는 오늘 컨디션이 좋지 않았던 걸까? 공연 마지막 주에 세 번이나 대사를 틀리는 건 분명 흔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 아냐는 대사를 틀린 것은 아..
어떤 사람에게는 이번 의 이야기('스토리', 또는 '서사구조')가 그저 "부패한 권력과 싸우다 보니 어느덧 전사로 변"했더라는 진부하고 평면적인 이야기로 보였나보다. 그러나 나는 이번 영화의 서사구조가 최소한 보다는 더 흥미진진하다고 생각한다. 탁월한 활솜씨를 지닌 한 남자가 오랜 전장 생활을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온다. 오랜 세월 비워두었던 집은 그의 '아내'가 돌보고 있으나 재산은 물론 그녀 자신의 운명도 위태로운 처지에 있으며, 오직 남편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릴 뿐이다. 드디어 '남편'이 사랑하는 아내에게 돌아와 스러져 가는 집을 다시 세운다. 이 이야기는 전반부의 이야기를 간략하게 요약한 것이다. (따옴표 안 내용의 진실성 여부는 잠시 접어두도록 하자.) 동시에 이 이야기는 호메로스의 의 이야기이..
박조열 작, 이성열 연출, 2010-04-15, 명동예술극장 그 동안 내 머리 속 오장군은 하회별신굿에 등장하는 이매와 닮아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이매와 오장군 중 누가 더 바보스러우며, 더 순박한 캐릭터인지는 생각 할수록 선뜻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인 것 같다. 이번 공연에서는 오장군 역할을 맡은 배우가 상당히 샤프하고 강인한 턱선을 가지고 있었다. 나를 비롯해서 같이 본 여러 사람들이 오장군 배역이 어울리지 않는다고 말하였다. 연출은 왜 이런 선택을 했을까? 외적인 요인이 있을 수도 있지만, 한편으론 오장군이 내가 그동안 생각해왔듯이 그렇게 바보같지 않은 인물일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 시골 농사군이라면 그 정도 체형을 유지할 수 있을 (또는 그것이 당연한) 것이고, 훈련소에서는 ..
어제 잠을 못잤으나 공짜 관람이기에 피곤을 무릅쓰고(?) 달려갔다. 브레히트 사후 50주년을 기념해서 그의 대표작들이 최근에 공연됨으로써 나로서는 브레히트를 공부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는 존 게이의 거지 오페라를 독일어로 번안하고, 쿠르트 바일의 작곡으로 만들어진 대중적 오페라라고 할 수 있다. 마침 예당 오페라 극장에서 베르디의 를 공연하고 있어서 두 개의 공연 현수막이 나란히 걸려 있는게 나름 의미심장하다고 느꼈다. 다만 일반 대중이나 기존 오페라 관객들 모두에게 다소간 외면 받는 것 같아 아쉬움이 남았다. 10인 편성의 라이브 재즈 연주가 음악극으로서의 오늘 공연을 더욱 생생하게 전달해주었다. 어느 일간지 기사에서 '라이브 밴드는 별미'라는 표현하고 있던데, 오히려 라이브 밴드의 음악이 ..
우리읍내 Our Town 원작: 손톤 와일더(Thornton Wilder) 번역: 오화섭/번안: 오태석 연출: 김한길 2006년 8월 5일 저녁 7시 30분 국립극장 달오름 극장 이 작품은 오태석 선생이 국립극장 예술감독으로 취임하고 공연하는 첫번째 작품이라고 한다. 공연을 끝낸 후 로비에서 관객들을 맞고 있는 그의 얼굴을 보았는데, (물론 그는 나를 알지 못하기에 그냥 지나 왔지만) 목에 수건을 두르고 손에는 대본으로 보이는 종이 뭉치를 들고 있는 그의 모습이 TV에서 보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공연 팜플렛을 이용해서 작품의 내용을 잠시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막이 오르면 무대감독의 설명으로 시작되어 197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초까지 경기도 가평 '우리읍내'에서 벌어지는 평범한 이웃들이..
이번이 두 번째이다. 샤샤 발츠를 본 것이 두 번째가 아니라 공연일자를 잊고 놓쳐버린게 두 번째이다. 기차도 놓쳐보고 비싼 공연도 놓치고, 갖가지 놓쳐버리는 놓치는 인생인가. 사정을 해서 보조석하나 얻어 공연을 볼 수 있었다. 예약 시스템이란 것에 딴지를 걸 수 없고, 그 만큼의 기회비용이 발생하는 일이라 나의 실수를 정당화할 수는 없겠으나, 뭐랄까 공연티켓을 사는 것은 단지 어떤 특정한 시간과 장소를 내가 임대하는 것이라기보다는 그 공연자들과의 만남에 대한 약속이기에, 그 공연을 보고자하는 의지가 담겨 있기에 빈자리가 발생하면 나같이 멍청한 실수를 범하는 자들에게도 관용을 베풀 수 있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각설하고 무용에 대해 그리 밝지 못한 나는 이 공연을 어떻게 보았나. 한마디로 장..
지각으로 막이 올라간 후 입장하였는데, 심상치 않은 무대가 시작되었다. 무대 바닥이 하나의 모니터로서 요즘 음악재생프로그램에서 지원하는 시각화(visualization) 기능같은 영상이 펼쳐졌고, 무용수들이 그 위에서 군무를 이루었다. 무용수들의 움직임을 '따라' 바닥에 펼쳐진 그림들도 파동으로 응답했다. 아니 어쩌면 그 파동을 따라 무용수들이 움직인 것인지도 모른다. 마치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하는 논쟁과 비슷하기도 하다. 어제의 그 무대 장치(조명이라고 하기는 좀 애매모호한 점이 있는 것 같아 보다 넓은 의미에서 무대 장치라 하자)에 대해 의견이 분분했다. 대형 LCD설, 미리 프로그램된 영상을 투사했다는 설, 또는 바닥의 센서가 무용수들의 움직임에 반응하는 것이라는 DDR설까지. 다음 이 점도..
서울 공연예술제 해외초청작인 러시아 극단 리쩨이넘의 오이디푸스 왕을 관람하였다. 놀자티켓이라는 기획티켓으로 봤는데, 예술극장 2층 가운데 맨앞은 생각보다 자리가 좋지 못하다. 난간과 조명들로 인해 시야가 가리기 때문이다. 결국 자리를 옮기고... 이 작품은 몇 해전 역시 공연예술제(그때는 연극제) 출품작으로 김명화 각색의 을 생각나게 했다. 그 생각이 분명히 난것은 바로 (정확히) 코린트식 기둥을 사신이 매고 나왔을 때였다. "~그것은 인간"을 보면서 무대에 대해 말하며, 나는 기둥 양식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 바가 있었던 것이다. 아무튼 그 당시의 무대는 무너진 희랍식 신전이 회전하면서 다양한 무대를 펼치게 되었다면, 이번 무대는 꼭 씨름판-아마도 오케스트라라고 볼 수도 있겠다- 같은 원형무대를 한가지..
어쩌면 우리사회는 아직 우리의 70년대를 보여주거나 봐줄 준비--용기, 너그러움 등--가 되어 있지 않은 것 같다. 에서는 대한민국 근현대사의 아픈 기억을 조심스럽게 들추어 내지만, 적당한 갈등 이후에 급하게 화해를 향해 달려간다. 이 문제는 극중 갈등이 애시당초 피해자끼리의 문제였다는 점에서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 아버지와 딸을 플롯의 중심에 두고, 아버지의 아버지를 언급함으로써 작품은 아직 끝나지 않은 냉전 반세기를 아우르는 데에는 성공하였으나, 각각이 충분히 다루어졌다고 보기엔 어렵다. 극중극은 유기적으로 연결된 두 개의 세계를 병렬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형식이다. 그러나 둘중 하나만 충실히 보여주는 것보다 못할 경우가 허다하다는 점에서 섵불리 시도해서는 안되며, 특히 하나를 완성하지 못해 절반짜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