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客記
'빌리 엘리어트'와 '블랙 스완', 두 작품 모두 '백조의 호수'의 특이한 버전을 그리고 있다. '빌리'에서는 매튜 본을 따라 남자가 연기하는 백조에 도전했다면, '블랙 스완'에서는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한 발레리나가 백조와 흑조를 동시에, 그러면서도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기를 요구한다. 두 가지 모두 성공여부로 따지자면 고위험군에 속하는 시도이다. '빌리 엘리어트'에서는 한 아이가 프로 발레리노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그린다면, '블랙 스완'에서는 이미 프로 발레리나가 된 한 여자가 주인공으로서 무대에 오르기까지의 과정을 보여준다. 발레나 연극이나 마찬가지로 리허설 과정에서 배우나 무용수가 자신의 배역을 소화하기 위해서는 힘겨운 노력이 요구된다는 점에서 '블랙 스완'은 연습과정에 직간접적으로 참여..
공연정보: http://www.playdb.co.kr/playdb/e_brochure.asp?PlayNo=19410 당초 "다큐멘터리 같은 공연"을 구상하면서 이 프로젝트를 시작했다는 연출의 말이 무색하지 않을 만큼 자료의 힘이 느껴지는 공연이며, 또한 그것을 관객에게 친절히 베풀고 있는 점이 돋보인다. 물론 구보, 또는 이상의 팬이라든지, 한국현대문학 전공자라면 장면 사이사이의 보충 설명들이 군더더기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관객들에겐 이러한 코멘터리는 장면전환을 더없이 유익하게 보낼 수 있는 방편일 것이다. 이제 자막 없는 TV를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우리는 브레히트적 요소에 익숙해졌다. 다원 연극이라는 이 공연의 성격은 2부 보다는 1부에서 보다 충실하게 구현되고 있다. 2부에서도 영상이 주..
"시를 쓰는 게 어려운 게 아니라 시를 쓰려는 마음을 갖는 게 어려워요." 미자의 시 선생님 김용'탁' 시인은 이렇게 말했다. 이 말은 마지막 수업시간에 숙제를 해 오지 않은 학생들을 꾸중하다가 나온 말이다. 그런데 선생님 본인처럼 시를 전문적으로 쓰는 사람이 아닌 이상에야 '시를 쓰려는 마음'을 갖는 게 어디 쉬운 일이랴. 미자는 영화 내내 시를 쓰려고 노력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아 좌절한다. 그리고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겠다고 되풀이한다. 선생님의 말에 비추어 생각한다면 미자는 마지막 순간까지 '시를 쓰려는 마음'이 갖춰지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결과만 놓고 볼 때 그 마음은 미자에게 아주 치명적이었다. 미자는 "자신의 종말이 막을 수 없이 다가오고 있음을" 느낄 때 비로소 시를 쓸 수 있었기 때문이..
나는 평소에 영화를 보고 극장에서 나올 때 주변 사람들이 뭐라고 이야기 하는가에 귀를 기울인다. 그 때 들리는 말들에 항상 수긍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사람들의 첫인상이 비교적 여과없이 나온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정보임에는 틀림없다. 오늘도 영화를 보고 나오는 길에 한 남자가 자기 일행들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었다: "이 영화의 교훈이 도대체 뭐야?" "힘있는 사람은 벌도 받지 않는다는 거지 뭐겠어..." 그동안 이런 식으로 훔쳐 들은 것 뿐만 아니라, 적어도 연극이나 영화 계통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아닌 일반인들과 같이 영화를 보게된 많은 경우에 그들의 첫번째 반응은 재미있다/없다와 함께 작품의 메시지나 교훈을 찾는 일이다. 그런 점에서 교훈과 즐거움을 시가 제공해야 할 두 가지 덕목이라고 지..
내 나라가 힘이 약해 남의 나라에 점령당한 것도 모자라, 남의 나라 전쟁에 강제로 끌려가야 했다면 그것보다 서러운 일이 또 있을까? 그런데 작가는 이 사람들 중에 전쟁이 끝나고, 나라가 광복을 얻은 다음에 더 기막힌 일을 겪은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적도 아래의 맥베스》에서는 강제 징용 되어 끌려간 조선 사람들이 전쟁 종전 이후 B,C 급 전범으로 분류되어 형무소에서 사형을 당한 기가막힌 사연을 다루고 있다. 이들은 싱가포르 형무소에 갇혀 있으면서 간간히 '마크베스Macbeth' '마크더프Macduff'를 대뇌이거나, 부치지도 못할 어머님 전상서를 쓰며 시간을 보낸다. 그리고, 자기 차례를 기다린다. 이 사람들의 삶은 너무나도 억울하고 또 부조리하다. 드디어 고향집에서 여동생이 보낸 편지를 ..
'남격' 팀의 합창 도전기가 오늘로 막을 내렸다. 맨 처음 오디션에서부터 오늘 합창대회 출전편에 이르기까지 두 달 가까이 대중들의 많은 관심을 얻음으로써 남격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 기획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이번 미션은 사실상 박칼린, 배다해, 선우나 서두원 같은 객원 멤버들의 역할이 절대적이었다는 점에서 남격 멤버들은 비교적 쉽게 이룬 성공일 수도 있다. TV란 보통 수많은 촬영분 가운데 NG들을 모두 걷어내고 베스트만을 보여주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번 프로젝트에서는 리허설 과정을 중심에 둠으로써 초보 합창단원들이 부르는 노래가 조금씩 완성되어 가는 모습들에 집중하였다. (물론 이와 유사한 성격의 '도전'이 경쟁 프로인 '무한도전'에서 이미 시도되었다는 점에서 남격 하모니 편은 자칫 아류에 머무를 ..
작년에 본 《로미오와 줄리엣》의 출발점 중 하나가 셰익스피어라면 나머지 하나는 바로 오늘 본 《LOVE》였다. 오늘 본 공연이 1년 전 작품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와 같은 모순적 표현이 가능한 것은 1) 이번 공연이 이미 《로/줄》보다 먼저 제작된 《LOVE》시리즈의 2010년 버전이기 때문이고, 2) 나로서는 《LOVE》 시리즈를 접하지 않은 상태에서 《로/줄》을 보았고, 오늘에야 비로소 그 선후관계를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가 경험한 순서 때문인지 《L. v. 10》는 나에게 《로/줄》의 데자뷰 같은 느낌이었다. 보는 내내 작년 드라마센터에서의 공연에서 인상 깊었던 것들을 다시 떠올리게 하고, 그동안 잠시 잊고 있었던 장면을 새롭게 해주었다. 뭔가 새로운 것을 기대했더라면 실망했을지도 모를 ..
이오진 作, 김태형 연출, 《가족오락관》(2010.08.19~09.05, 대학로 게릴라 극장) 어느날 갑자기 찾아온 아버지의 죽음은 남겨진 가족들에게 힘겨운 날들만 안겨주었다. 그러던 어느날 회식 2차로 갔던 노래방에서는 어머니가 도우미로 들어오고 자기가 싫어하는 (그리고 자기를 싫어하는) C조팀장은 어머니를 끌어안고 부비댄다. 아들은 자기 가족에게 이같은 불행이 찾아온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묻기 시작한다. 아들은 아버지를 죽여놓고 자기는 잘 살고 있는 원수(a)를 죽이면 좀 살 것 같았다. 어쩌다 보니 온 가족이 그 일에 동조, 동참하게 된다. 그랬더니 그들에게는 새로운 원수가 눈에 보이기 시작한다. 딸의 원수(b), 엄마의 원수(c), 아들의 원수(d)를 차례로 죽인다. 그런 다음 이 가족의 진짜 원..
Inception은 시초, 발단 , 개시라는 뜻이다. 대학에서 학위를 받고 제도권 학자로서 첫걸음을 떼는 것처럼, 무엇을 시작하기에 앞서 받아야 할 것이 있다는 말이다. 단어 뜻으로 보자면 이 작품은 "태초에 꿈이 있었도다" 정도로 요약할 수 있겠다. 모두가 꿈을 꾸고 많은 사람이 사랑을 하며, 또 필연적으로 언젠가는 그 사람을 잃는다는 점에서 이 이야기가 무의식 세계를 복잡하게 (또는 복잡하게끔 보이도록) 펼침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의 공감을 살 수 있을 것 같다. 여기에 헐리우드가 노장사상에 주목했다는 점, 꿈 속으로 들어가면서 시간의 왜곡이 일어나 그로부터 발생한 시간차를 이용하여 위기에서 탈출한다는 설정 등은 흥미롭다. 또한 무중력 상태를 담아낸 장면은 인상적이다. 그러나 전반적으로는 들인 돈에 ..
김명민이 주연한 "파괴된 사나이"를 봤습니다. 더할 것보다 뺄 점수가 많은 작품이었습니다. 최근 관객몰이에 성공한 유괴/납치 영화들을 조합한 매너리즘인데, 어떤 원인에서인지는 모르겠지만 각각의 요소가 넘치거나 모자라 아쉽네요. http://twitter.com/seanted/status/18599947598 트위터에다 간단하게 감상을 올린 이후 좀더 보충할 필요가 있을 것 같아 아래와 같이 덧붙여 봅니다. *** 매너리즘이라서 잘못된 것은 아니다. 다만 거인의 어깨를 빌려 높이 올라갔다면, 거인보다 조금이라도 더 멀리 보아야 하는데, 그런 면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이 이 작품의 문제이다. 주영수가 아이를 유괴당하고 8년이라는 세월이 지나 다시 만난다는 상황은 《올드보이》에서 오달수가 납치당한 뒤 15년이 ..